[남북관계] DJ 햇볕정책 화려한 마무리 한나라 "신북풍" 의혹제기

남북교류 복원은 절묘한 계산일치

김대중 대통령이 현 정권 임기를 6개월 남기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이 같은 게임이 DJ의 국가를 위한 충정인지 아니면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도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해빙 무드가 연말 대선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남북은 8월 2~4일 금강산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 실무접촉에서 8월 12~14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 이어 민간차원의 ‘8ㆍ15 서울 민족통일대회’, 9월 북한의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 및 남북 축구대회, 이산가족 상봉 등이 줄을 잇게 된다.

이 같은 행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연말 대선을 앞두고 남북 관계는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한반도는 해빙 무드에 젖어 들것으로 보인다.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이 같은 남북 화해분위기가 집권 초기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햇볕정책의 결과라며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은 8월5일 남북장관급 회담과 관련, “통일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세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남북 장관급 회담 실무대표 접촉결과를 보고 받고 “남북관계의 추진에 있어선 일관성이 중요하며 절대로 조바심을 내거나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이번 남북관계의 진전이 미북, 북일관계 개선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을 당부하면서 남북회담 결과와 추진계획에 대해 3당을 비롯한 정당 대표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라고 정 장관에게 지시했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특히 북한의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 결정은 체육교류를 통해 남북간의 화해ㆍ협력 정신을 아시아인과 세계인에게 확인시켜 주고 부산 아시안게임을 명실상부한 평화와 화해의 제전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성과 있는 대화를 통해 이산가족상봉이나 남북간 철도연결 등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방적 양보는 그만

그러면 북한은 과연 김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이처럼 남북 관계를 급진전 시키려는 것일까. 북한은 최근 한·미·일을 상대로 펼치고 있는 대화 전략에서 나름 대로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직결된 본질적 사안은 북미 대화에서 다루고, 남북관계와 북일 관계에서는 일련의 화해제스처를 통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 얻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했으며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즉 남한으로부터 쌀 등 식량지원을, 일본으로부터는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의 피해를 청산하는 대가로 보상금 등을 받아 내는 등 자본을 얻어내겠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혈맹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한계가 있는 만큼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경제 개혁에 필요한 자금과 물품 등을 지원 받겠다는 실리적 계산을 하고 있다.

북한은 또 미국과는 대량살상무기 등을 담보로 최소한 안전보장 약속을 받아내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력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평통이 8월 1일 미국과의 대화에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6·29 서해교전의 최대 피해자인 남한이 정작 이 문제를 다루는 대화에서 배제된 것도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이 이 같은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DJ의 햇볕정책에서 전적으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사정이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에 스스로 대화의 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도 제도화·정례화할 수 있는 합의는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북측의 뜻에 따라 이산 가족들이 부정기적으로 상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는 따라서 북한과의 일련의 대화에서 일방적인 양보 대신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은 받아내야 한다. 물론 서해 교전의 사과 및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요구를 이번 기회에 관철해야 할 것이다.이는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고 국민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나라당, 정치적 의도에 촉각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의 해빙무드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신북풍’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청원 대표는 8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금강산회담에서 서해교전에 대한 재발방지책이 명문화되지 않아 유감이며, 이런 회담이라면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지 않을 경우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어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6월 청와대를 극비 방문한 이후 방북설이 나오고 있다”며 “북한을 대선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배 정책위의장도 “쌀을 비롯한 이면합의가 뭔지 의심이 간다”면서 “북한은 경제난 심화를 타개하기 위해서, 현 정권은 대선을 위해 남북대화를 이용하기 위한 주고 받기식 합의가 아니냐는 의혹이 간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금강산 등에서 일회성으로 이뤄져서는 안되며 판문점 등에 면회소를 설치,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대변인은 이어 “북한에 30만 톤의 식량과 금강산 해수욕장 개발비 등 수 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킨다는 시나리오의 시작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한 측근도 “대선국면에서 북풍을 이용하겠다는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정형근 의원이 주장한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방북 특사설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한 대표가 방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성사시킬 경우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갑 대표는 자신의 방북논란과 관련, “북한에 가서 내가 생각하는 통일방안과 북한의 생각이 다른 점이 있는 것에 대해 토론하겠다는 생각은 있다”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한나라당측의 ‘특사자격’ 의혹제기에 대해 “정부에 사람이 없어 나를 특사로 보내겠느냐. 정부와 교감도 없다”고 일축하고 “박근혜씨도 개인자격으로 갔다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표는 “콜린 파월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백남순 북한 외무상을 만나 대화재개에 합의한 것에 대해선 왜 신북풍이라는 말을 안 하느냐”며 “대선에 불리하다 해서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우리당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당이냐”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한나라당의 의혹제기를 반박한 것이지만, 방북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조만간 방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방북 목적과 일정 등이 주목된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6:03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