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민심이 거부한 총리 인준

장상 국무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이 결국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총투표자수 244표 중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의 결과이니 적지 않은 표차다.

물론 이 부결을 두고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더 강화되게 되었고 여야 자유투표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등의 여러 해석이 많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통해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 작용했던 민심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인사청문회 과정을 보면서 일반 대중들의 상식적인 판단이 만들어냈던 아래로부터의 여론, 즉 민심이 장 총리서리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만들어냈고, 상당수의 의원이 이 민심을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이 이번 부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심’이란 무엇인가? 장 총리서리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만들어냈던 여러 문제들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 개개인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세간의 민심은 그러한 법적 판단과는 또 다른 판단을 제공해준다. 그럼 점에서 민심은 때에 따라 우리로 하여금 법적 판단 이상의 사회적, 정치적 판단을 가능케 해준다.

우선 장 총리서리에 문제가 되었던 위장 전입 및 부동산 투기의혹을 둘러싼 민심의 판단은 어떠한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라 본다. 우리사회 상당수의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로 통해 부를 축적해왔던 것은 너무 흔한 일이었고 너무나 익히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나 특권층이 가장 손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방법이었다. 따라서 장 총리서리는 인사청문회에서 그 의혹을 분명하게 해소해야 했는데도 그러하질 못했다.

다음으로 장 총리서리의 아들의 미국 국적문제는 어떠한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미국 국적을 갖는 것에 일반 대중이 비난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미국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국적문제가 비난을 받는 것은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특권으로, 특히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에서 병역 의무란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강요된 고생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애국심 여부를 떠나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그 고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 대중의 판단인데 나는 그것 역시 한국판 평등 관념의 하나라 생각한다.

장 총리서리의 학력 허위기재 의혹 문제 또한 그렇다. 그것이 고의적인지 아니면 우연한 실수인지 나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벌 자체가 커다란 신분상의 특권이다. 그런 만큼 당사자, 특히 우리사회 고위층 당사자는 그것의 오해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본다.

장 총리서리의 인준 부결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침체된 한국의 사회분위기에서 장 총리서리의 임명이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인준이 부결되어 “애석하다”고 언급했다. 매우 옳은 말이다.

또한 장 총리서리에 대한 인준 부결이 여성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부 여성계의 반발이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장 총리서리에 대한 인준 부결의 배경에는 우리사회의 특권층 또는 엘리트층에 대한 일반 대중의 깊은 불신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 사회의 특권층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때 그들 존재의 정당성은 어느 정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서 찾아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특권층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장 총리서리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일반 대중은 그것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2002/08/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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