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탐색에 마침표는 없다

로커 최소리, 4집 ‘소리를 본다’ 발표, 장르 초원한 크로스오버 앨범

“2년 동안 함께 산중 수련한 결과죠.”

타악 주자 최소리(37)가 네 번째 앨범 ‘소리를 본다’를 발표했다. 서울 서대문구 진관외동 북한산 중턱에 있는 자택 창고에서 매일 오후 3시~자정까지 갖가지 타악기를 만지고 연주한 결과다.

신보에 실린 10곡은 한국적 타악기가 록 음악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의 결과이다.“국악 양악 재즈 등 기존 장르를 초월해 만든 크로스오버 앨범이죠.”


한국적 선율로의 귀결

도입부의 ‘격외선당’이나 ‘비단길’의 장려하고도 서정적인 주제 선율은 언뜻 듣기에는 기타로의 ‘실크 로드’와 비슷하다. ‘낯선 곳에서의 잠’ 역시 신디사이저를 주조로 한 서정적 록이다. 그러나 곡이 진행돼 가면서 전체적 선율의 분위기는 점점 한국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덩더꿍 장단에서 시작하는 ‘미로’는 물허벅 아쟁 피리 등 토속 악기들의 향연장이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온다’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민요적 선율에서 출발해 블루스로 변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구음(口音)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했다. ‘황사의 계절’에는 아녀자들의 웅성임이 합창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재현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한 장조 선율인 이 곡에는 새봄을 맞은 기쁨이 국악적 흥취로 가득하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는 곡은 ‘히로시마의 기억’이다. 대금 음색의 신디사이저가 한국적 선율을 낮게 깔면 절간의 큰북을 난타하는 소리가 뒤를 잇는다.

이어 록 드럼의 폭발적 타격음이 원폭 투하를 상징하고 신디사이저와 어쿠스틱 기타가 낮게 깔리면서 잦아든다. “1997년 이후 1년에 서너번 콘서트를 가져 오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적 마무리를 지어 본 곡이죠.” 사회성 짙은 주제까지 포괄해 온 최소리의 폭 넓은 관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리의 진실을 찾아서

“대중 음악에도 진실이 가장 중요하죠. 요즘 팝에는 거짓이 너무 많아요.”

이번 앨범에서 도자기 북과 소리금(琴) 등 자신이 제작한 악기를 적극 구사한 것도 그만큼 더 진솔한 자신의 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이다.

‘도자기 북’이란 북의 몸통을 나무가 아닌 도자기로 바꾼 창작 타악기로 나무 몸통과 쇠가죽으로 만든 보통 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명음이 특징이다. 고려청자 도예가인 그의 장인 해청 정병묵(57)이 구워 준 도자기에 한지를 겹겹이 붙여 울림판으로 쓴다.

‘소리금’은 현을 손으로 뜯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채나 철사 등으로 줄을 두들겨 소리를 내는 악기다. 아쟁의 모습을 닮은 몸통에 6~17개 현까지 장치 가능하다. 맑고 카랑카랑한 음색이 울려 퍼진다.

1집 ‘두들김’, 2집 ‘두들김2’ 등에서 타악적 가능성을 시험하던 그는 3집 ‘5월의 꽃’에 이르러 음악적 본령을 분명히 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소재의 파격성은 물론 다양한 타악기 연주로 타악기의 지평을 넓혔던 음반이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은 ‘히로시마의 기억’으로 건재를 증명한다.

양악인지 국악인지 구분하기 힘든 음악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그는 “당신의 음악적 정체성이 도대체 뭐냐”고 물을 때 마다 곤혹스러워 한다.

“국악에 근거한 창작 악기, 새로운 연주 기법, 샘플링 같은 컴퓨터 음악까지 포함하는 나의 음악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월드 뮤직’이란 말이 가장 적절하겠죠.”그가 말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이다.

장병욱 기자

입력시간 2002/08/12 09:24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