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 산] 천태산

험한 돌길에 '악', 절묘한 바위에 '악'

산꾼들에게 올 여름만큼 실망을 안겨준 계절이 또 있었을까. 산은 여름 내내 구름과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산 위에서의 툭 터진 조망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천태산(720㎙, 충북 영동군, 충남 금산군)을 오르는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

천태산은 ‘충청의 설악’이라 불리는 산이다. 붉고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돌산이다. 잔잔한 육산보다 네 다리(?)로 기어오르는 돌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거리가 무척 가까워졌다.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입구는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이 꽤 넓다.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가 보다. 매표소를 지나면 맑은 계곡물이 함께 하는 길이 나타난다. 풀냄새, 나무냄새가 그윽하다. 30여 분을 걸으면 왼쪽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삼단폭포이다. 반들반들한 바위 물길을 따라 하얀 포말이 떨어진다.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며 세 번 낙하한다고 해 삼단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찌 보면 용이 몸을 움직여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옛날에는 용추폭포라고도 불렸다.

조금 더 걸으면 거대한 나무와 만난다. 천연기념물 제 22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이다. 가슴둘레가 11m, 높이 31m이다. 나이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약 1,000년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은행나무 뒤로 고즈넉한 절이 기다린다.

양산 제1경이라고 불리는 영국사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1,300년이 넘은 고찰이다. 보물 제533호인 3층 석탑 등 4개의 보물이 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영국사에서 시작한다. 천태산에는 모두 4가지의 등산코스가 있다. A, B, C, D 코스로 이름이 붙여졌다. 양산에서 약방을 경영하는 배상우씨가 손수 등산코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B, C 코스는 자연휴식을 위해 폐쇄해 놓았다. A코스로 올라 능선을 일주하고 하산하는 D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법이다. 약 6.5㎞로 3시간 30분이 걸린다.

영국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작은 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숲으로 길이 나 있다. A코스는 바위 능선을 직선으로 올라 산 정상에 닿는 길이다. 처음부터 ‘무척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해야 힘이 덜 든다. 길은 대부분 바위 위로 나 있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흙을 거의 밟지 않는다. 곳곳에 매듭을 묶은 로프가 길을 연결해 준다.

정상 가까이 다가가면 바위산행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바위 직벽을 로프를 타고 오르는 암벽 등반길이다. 약 75m의 코스를 로프에만 의존해 올라야 한다.

물론 중간 중간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많은 사람이 오른 것을 이야기하듯 로프가 내려진 바위를 따라 길게 홈이 패어있다. 안타깝게도 내린 비가 그 홈을 따라 작은 폭포처럼 졸졸 흐르고 있다. 한 번 매달려 봤다. 무척 미끄럽다. 안전제일. 직벽코스를 우회했다.

노약자나 초심자를 위해 바위를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위험은 덜하지만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른쪽으로 정상 가는 길이 나 있다. 지나온 길보다는 비교적 완만한 길을 약 15분 오르면 천태산 정상이다. 일단 정신이 없다. 약 5분간 숨고르기. 그리고 밑을 내려다 본다. 구름에 가렸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본다. 구름 사이로 슬쩍 비치는 산의 모습. 기괴한 바위의 도열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일부만 보았을 뿐인데 홀딱 반할 정도이다.

권오현 차장

입력시간 2002/08/23 10:3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