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돌아온 '큰 형님' 김상현 의원

“다들 컸지만 제가 현장에 있으면 달라질 것입니다.”

2년4개월 만에 국회에 돌아온 민주당의 ‘큰 형님’ 김상현 의원은 8월 14일 ‘주간한국’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그것을 ‘킹 메이커’라고 해도 좋다”며 “정몽준 의원, 자민련, 민국당 등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통합과 화합을 이루는 데 전력 투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민주당의 분당은 막을 것이며, 그 문제로 지도부와 만나고 있다”며 위기에 처한 민주당의 새 구심점 역할을 할 뜻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김 의원은 “나는 일을 만드는 사람이지 뭐를 하려고 하진 않는다”며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해 당장은 당권에 도전할 의사를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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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상현 의원100K / 300K

/유영근 기자

김 의원은 “국회 등원에 대해 (DJ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생각한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소원했던 관계가 어느 정도 풀렸음을 시사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 후보에 대해 “(노 후보측)자신들만이 개혁이라고 한다면 독선”이라고 말해 노 후보측과 거리를 두었다.


DJ가 날 광주로 보내준 것

- 2년여 만에 국회에 재등원한 소감은.

“사실 4ㆍ13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리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김 대통령과는 50여년간을 ‘형님, 동생’하며 형제 같이 지내 왔습니다. DJ, YS와 함께 온몸을 던져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했습니다.

5년간 옥고 생활을 했고, 1970~80년대 3차례나 수사기관에 연행돼 갖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한국 정치인 중 최장인 17년간의 정치 규제와 73차례에 걸친 가택 연금을 당했습니다. 그 후에는 가신 정치 청산을 위해 노력 했습니다.

그런데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공천을) 안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공천을 받은 것은 ‘김 대통령이 나를 광주로 보내준 것이다’라고 생각 합니다. 대화합을 통해 한국정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친노측과 반노측이 갈등을 겪고 있는데 창당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입니까.

“신당은 과거 민주당과는 달리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민주당의 간판을 바꿔다는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개방을 통해 신당에 참여한 누구라도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언론에서 오르내리는 후보군들을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신당의 성패가 될 것입니다. 민주당 사람끼리만 모여서 하면 실패합니다.”

- 김 대통령과 동교동계와 관계가 소원했는데, 누가 공천을 밀어 주었습니까.

“당내에서 제가 원내에 진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공천을 받게 된 것은 중앙당이 두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11명의 후보군을 리서치 했는데, 제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공천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광주 북구 유권자들이 추천한 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노무현 후보가 김 의원의 공천을 반대하지 않아 일부에서 김 의원을 친노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입니다. 당원으로서 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폐단은 패거리 정치입니다.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당의 조직원으로 후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 의원이 김 대통령과 동교동계의 쇠퇴로 분열 양상을 빚고 있는 민주당을 추스려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평소에 나는 스스로를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저는 29세에 처음 국회의원이 된 이후 일관되게 ‘신화를 창조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정치 인생의 목표는 바로 ‘신화를 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킹 메이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발굴하고 그 사람의 역량을 발휘 시켜 능력과 지혜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뛰어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이 나라에 좋은 정치 모델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김대중ㆍ김영삼 대통령도 이런 정치 개혁을 추진한 적이 없습니다. 공천부터 상향식으로 하고, 대화와 조화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DJ나 YS에 말 한마디 못한 채 잘 보여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정치의 중임이 돼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정치인 자신은 변하지 않고 상대방만 변하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한국 정치가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정규환은 내가 정치입문 시켜”

- 김 의원과 가까운 민주당 중진은.

“대부분 가깝습니다. 정대철 김근태 김원길 장영달 의원 등과 모두 절친합니다. 정균환 최고위원은 제가 정치에 입문 시켰습니다. 동교동계도 저를 만나면 ‘형님, 형님’ 합니다. 다들 컸지만 제가 현장에 있으면 달라 질 것입니다.

앞에 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 중요합니다. 큰 정치를 할 것입니다. 내가 안 나서더라도 일을 할 것입니다.”

- 김 대통령과는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적이 있습니까.

“뵙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된 것을 다들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안 하겠습니다.”

- YS나 DJ도 정치 개혁에 실패했는데 차기 지도자는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지도자는 본인 자신의 도덕성과 변화ㆍ개혁 실천의 모델이 되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 희생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줘야 합니다. 한국정치는 포용력이 부족해 패거리 정치가 되었습니다. 내편을 든 사람은 동지고, 반대편에 선 사람은 적입니다.

정치가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통합과 화합을 이끌어내야 하는 데 오히려 대립을 더욱 심화 시킵니다. 지금도 긍정적인 측면은 외면하고 상대방 약점 들춰내기 폭로 전으로 일관합니다. 이것이 청산돼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바다와 같은 정치가 되야 합니다.”

- 그렇다면 포용력 갖춘 차기 대통령감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특정인을 들기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국민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저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동안 마음 속으로 평가한 것 중에 맞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 신당이 노무현 신당과 정몽준 신당으로 갈라져 노무현-정몽준-이회창 후보의 3자 대결 구도가 될 경우 누가 유리할 것으로 봅니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신당에 외부 인사의 참여가 안되고 과거 회기식 신당이 된다면 분당(分黨) 같은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정치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지도부들을 만나서 단합과 세 확장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여론 조사로 볼 때 3자 대결이 된다면 이회창 후보가 유리할 것입니다.”


DJㆍYS, 정치개혁에는 실패

- 노무현 신당과 정몽준 신당이 대선 직전 통합하는 제2의 빅뱅 시나리오도 나오는데.

“신당 창당을 통해 노무현ㆍ정몽준 후보가 대선 후보 경선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면 최선의 시나리오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안되고 민주당이 외연을 넓히지 못한 채 노 후보를 재추대 하게 된다면 민주당이 아주 좁아지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민주당 중심의 신당이 된다면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 김 의원 공천은 위기에 처한 민주당의 새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역할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지 제가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의 분당은 막을 것입니다. 그 문제로 지도부를 만나고 있습니다. 정몽준 의원 등 유력 후보들이 함께하는 대통합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신당에서 당권 도전 의사는 없으십니까.

“저는 일을 만드는 사람이지, 제가 뭐를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동지들이 있으니까 내가 그분을 뒷받침하고 도우면 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의 세력을 확대하고 통합해서 재집권할 수 있는 후보를 세우는데 전력 투구할 생각입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화 동지인데 공천을 못 받는 등 DJ와 소원해진 이유는.

“김 대통령과는 50년간을 형님, 동생 하면 지냈습니다. 그 분이 가장 힘들 때는 항상 그 양반을 위해 일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고문 당하며 최선을 다해 대통령을 만드는 데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소원해 진 것은 1987년 대선 때 제가 DJ와 YS의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면서부터 입니다.

김 대통령은 그 부탁을 져 버리고 탈당해 평민당을 창당했는데 저는 김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 했던 때입니다. 김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더구나 저의 지역구인 서대문구의 유권자의 38%가 호남 사람이라 김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으면 국회의원도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내 개인을 위해서는 따라가야 하고, 정도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따라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100년 뒤 후대를 생각해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총재권한대행을 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김 대통령과 멀어졌습니다. 저는 DJ, YS,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과도 시시비비를 따지면 살아왔지 잘 보여서 한자리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후 다시 (김 대통령과의) 관계가 복원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1997년 대선 때 제가 김 대통령에게 대선 후보 경선을 철저히 하자고 했습니다. 김 대통령에게 “제가 당 총재하고 형님은 대통령 후보를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하고 제의 했습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그것은 안 된다’고 해서 내가 (당을) 나갔습니다. 아마 그런 것들이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선배로서 퇴임을 앞둔 김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다면.

“김 대통령이 당 총재를 그만두고 탈당할 때 김 대통령이 민주당을 개혁해서 당의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해서 당을 떠났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정당 정치 개혁을 주도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못해 아쉽습니다.

한국 정치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상습화 됐습니다. 김 대통령은 공과(功過)에 있어 공이 과 보다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하고, 남은 기간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정권에게 좋은 모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많이들 컸지만 내 앞에선 모두 ‘형님’ 예우

- 민주당 일각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내각책임제를 원합니다. 우리 같이 민주주의 훈련이 되지 않은 나라는 책임 정치를 할 수 있는 내각제가 적합합니다. 권력 분산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여야가 합의해서 헌법 개정을 해야 합니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임기 내에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시급합니까.

“지역 정당으로 평가 받는 한 안됩니다. 이번에 포용력 있는 대통합을 이뤄야 합니다. 모든 정파가 참여한 통합과 화합의 정치의 모델을 갖춘 신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민련과 민국당 등 보수 세력까지 포함한 형태가 되야 합니다. 어떤 집권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만약 노 후보의 측근들이 자기들만 개혁이고 자기편이 아닌 사람을 반개혁이라고 한다면 독선입니다. 그들이 언제부터 개혁을 했습니까? 어떤 개혁을 했다는 것입니까? 오늘 정당의 민주화를 온 것은 저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집권 못합니다. 정치는 포용입니다. 노 후보나 이 후보나 모두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8/23 10:56


송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