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이인제의 비민주성과 민주당

민주당이 분당 사태로 치닫고 있다. 신당 창당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내의 갈등과 반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이인제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노(反盧)그룹의 탈당 가능성이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새로 나지 않는 한, 사실 민주당의 분당 위기는 불가피한 것일지 모른다. 과거 독재 기간 동안 시련은 많았지만, 반독재 민주화 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은 가장 분명한 정체성을 유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지역주의에 의해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었지만, 그럼에도 정치인 김대중이 이끄는 민주당(이름은 여러 번 변했지만)은 민주 야당의 정체성을 그런대로 지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동정권이기는 했지만 마침내는 집권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아들의 비리로 민주당 정권이 부패정권으로 심판 받고 김대중 대통령 자신도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생존과 소멸의 기로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생존 또는 그 집권은 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민주당의 재탄생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은커녕 명분도 없는 내부 갈등만을 거듭, 마침내는 분당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 민주당이 처한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당이 새롭게 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국민경선이 바로 그 기회로서, 국민 배제의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보장되었던 가장 민주적이었던 절차였던 그 경선은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다시 신뢰를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경선의 결정과 그 권위가 동요되면서 민주당은 재탄생의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기회를 무산시켰던 것은 한나라당도 아닌 바로 민주당 자신, 특히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던 당내 그룹이었다.

물론 그 책임에는 경선 결과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노무현 후보에게도 있을 수 있다. 후보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구심점을 구축, 민주당을 이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경선 결과를 인정치 못했던 민주당 내부의 비민주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국민경선에서 패배했던 이인제 의원과 그 지지그룹의 비민주적 태도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새 세대 정치인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미덕은 민주적 태도, 즉 공정한 정치 경쟁의 절차와 그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는 태도이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지만 그 상식은 한국정치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이인제 의원은 199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불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민주당 경선에도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사적 이해를 위해 정당의 이합집산을 꾀했던 것이 ‘구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면, 이인제 의원의 태도는 과연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인제 의원을 위시한 반노그룹은 반창(反昌) 연대의 신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적인 권력탐욕과 비민주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념과 정책이 다른 각 정파들이 권력 장악만을 위해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하는 것은 민주적인 정당정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국민경선의 민주적 절차에 승복할 수 없는 집단의 사적 감정이나 이익을 위해 추구된다면 그 모습은 더욱 추해질 따름이다.

자신의 결정조차 지키지 못하는 민주당이 향후 국민 앞에 그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태가 복잡한 것 같지만 문제의 본질은 의외로 분명하다. 국민경선의 결정을 지키고 이에 승복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요소들은 제거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의 민주당은 대선은 차치하고, 현재 자신의 결정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원칙도, 권위도 없는 정당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정해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08/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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