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명품 코리아를 기대하며…

좀 반감이 들겠지만, 이 글의 결론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치품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세계 곳곳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단지 생필품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가 오래 전에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코코 샤넬은 “사치품은 필수품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필수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 경제 전문잡지인 비즈니스 위크는 세계 100대 상표(The Best Global Brands 100)라는 리스트를 발표했다. 미국에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 리스트를 나름대로 다시 분석해 봤다.

100대 브랜드 중 미국이 65개로 단연 선두, 독일과 일본이 각각 6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5개, 그 외 스웨덴,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각각 2개 내지 3개, 그리고 핀란드와 우리나라(삼성, 34위), 섬나라 버뮤다가 각각 1개씩 포함되어 있다.

리스트에 포함되는 국가가 단 12개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일단 들어간 것만 해도 자랑스런 일이다. 일단, 리스트에 포함된 나라들과 브랜드의 숫자,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국력 사이에는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이 있다. 입고(신발 및 장신구 포함)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브랜드가 40%를 차지하는데, 이것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므로 사치품에 해당한다.

스위스(네스카페, 네슬레, 롤렉스), 프랑스(루이비통, 로레알, 샤넬, 데논, 모에 샹동), 이탈리아(구찌, 프라다, 아르마니)는 모두 거기 해당한다. 영국도 5개 중 두 개(조니워커, 스미노프)가, 미국은 22개가 그렇다. 따라서, 사치품과 국력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사람들은 점점 브랜드에 민감해지고 있다.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교육, 인종, 언어, 문화적 배경만큼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구찌로 치장하는 일본 사람은 그 이웃집 사람보다는 오히려 같은 물건을 사는 서울, 베를린, 뉴욕 사람들하고 공통점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명문 고등학교, 명문 의대를 나온 백인 의사라면 굳이 좋은 자동차를 몰고 다닐 필요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알아 주니까. 이제 사람들은 값싼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의사한테는 안 간다고 한다. 뭔가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걸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깊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역설을 되새겨볼 만하다.

물론, 산업재나 생필품 분야에서도 당연히 한국의 기존 주력 기업들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치품들도 많이 진입해야 한다.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사치품은 그 자체의 경제적인 효과는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높이는 트로이 목마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치품이 성공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언뜻 생각해 보면, 디자인 능력, 품질, 서비스, 그리고 뭔가 독특한 신비감(mystique) 등이 있다. 사실 우리는 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민족 아닌가.

이미 우리는 전세계 명품들을 완벽하게 복제해 내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알아 주는 손재주도 있지 않은가. 한국이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든다면 10대에서 30대의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휴대폰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이 자존심을 가장 세워준다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라.

이제 기업들은 목표를 높게 잡고, 뭔가 하나를 만들더라도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야 하고, 애국심에 호소하며 경쟁력 없는 상품을 밀어 부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민들은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식의 하향적인 평등의식은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소비에 대해서는 지나친 비판도 삼가야 한다. “가장 뛰어난 것이 이기게 하라(Let the best win)”가 우리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노력할 때 그 열기를 결집해서 한 방향으로 밀어줄 수 있는 국가적인 리더십이 한국에 있는냐는 점이다. 후진적인 정치상황이 국가 이미지를 다 깎아 먹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 100대 브랜드에 한국 브랜드가 10개 정도 들어가고, 한국 사람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단순히 국산이어서가 아니라 값비싼 사치품으로도 선호하는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김언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입력시간 2002/08/23 10:5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