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 인터넷 언어

다음은 최근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문장 중의 일부이다. 표준어로 번역해 보기 바란다. 아래의 글을 쓴 사람은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결코 난수표나 암호문은 아니다. ‘주간한국’의 독자들을 위해서 시간을 제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예문) 므ıㄹr그¿¿믓ㅇrㄹГ 믁ㄱ-ıı썯-_-¿ 으즈ı옫せせr ㅇĦㅅ ㄴrㄹ ㅇ-]]늣 ㅈF알 읽으ㅉFㄴF ㅇЪㅊЪ 실ㅁБㅎĦ쓰... 흗¡¡

예문을 성공적으로 판독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 ‘맨 인 블랙’에 등장하는 비밀요원과 접촉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자신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외계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위의 예문과 같은 방식으로 씌어진 글들을, 한때는 ‘지랄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요즈음의 인터넷에서는 일반적으로 ‘외계어’라고 부른다. 그러면 정답 풀이를 해 보자.

(판독) 믜라그? 믓아라 믁게썯?-_- 으즤 옫빠 얫날에늣 쟈알 읽으쨔냐 엄청 실망햬쓰 흗!

(해석) 뭐라고? 못 알아 먹겠어?-_- 우리 오빠 옛날에는 잘 읽었잖아. 엄청 실망했어. 흑!

(참고) -_- 는 난감한 표정의 이모티콘(emoticon)이다. 이모티콘은 emotion과 icon의 합성어로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각적 도상을 말한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지구인'이 있다면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r' 은 알페벳 소문자가 아니라 한글 모음 'ㅏ'의 변형태이고, 일본 가나 'せ'는 소리와 상관없이 'ㅂ'과 형태가 닮았기 때문에 사용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F'는 'ㅑ/ㅏ'를, 'Ħ'는 'ㅒ/ㅐ/ㅖ'를 시각적인 차원에서 대체하고 있다.

또한 시릴(cyril)문자인 'Ъ'와 'Б'는 각각 'ㅓ'와 'ㅏ'에 'ㅁ'이나 'ㅇ' 받침이 붙은 모습을 표상한다. 'ㄱ-ıı'는 '게'를 'ㄱ'과 'ㅔ'로 풀어쓴 것이다. 시각적 차원에서 확인되는 글자 형태의 유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여러 게시판에서 외계어 사용과 관련된 논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외계어를 언어파괴로 규정하고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사이트들도 늘어가고 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한글 훼손과 의사소통의 장애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개성 표현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외계어 번역 프로그램이 선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tongjang.x-y.net/gg/start.php) 8월 16일 현재, 508개의 외계어 단어와 숙어가 입력되어 있다고 한다.

직접 해 보았는데, 소문 만큼 번역이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초기의 인터넷 언어는 구어성(口語性:orality)을 반영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다. 채팅 문화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어(文語)가 가지는 공식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사적인 대화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방가'(반가워요) '어솨요'(어서 와요) '안냐세여'(안녕하세요) 등의 초기 인터넷 용어는 실제 생활의 언어습관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축약을 통해서 구어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무의식의 표현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의 통신공간에 진입했다는, 문화적 구별짓기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외계어는 표준어의 범위 내에서 구어의 분위기를 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은어와 사투리와 같은 하위 언어양식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활자꼴)와 관련된 시각적인 측면의 활용과 함께, 문법파괴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맞춤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자음과 모음을 풀어쓰고,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무의미한 기호들을 삽입한다.

한자·특수기호·외국문자의 사용도 두드러지는데, 한자의 경우 제한된 글자이기는 하지만 향찰이나 이두처럼 음독과 훈독의 가능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외계어와 관련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외계어가 또래집단이나 동호회 내부에 국한된 의사소통을 욕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표기 체계의 규범 바깥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세상이다.

입력시간 2002/08/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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