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집] 천연유기농식당 ‘이랑’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소박한 밥상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음식과 보약은 그 근원이 같다는 뜻으로 음식을 귀하게 생각했던 선조들의 음식철학을 보여주는 동시에 약보다는 음식으로 병을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몸이 아프면 바로 병원이나 약국에 들러 즉각적인 치료 효과를 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뜬구름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최근 들어, 잘 먹어야 잘 산다는 인식과 함께 채식열풍이 불면서 먹는 것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건강 식단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데,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 재료들 대부분이 농약과 각종 화학 비료 속에 그대로 노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변에 100%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하는 식당이 있다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비록 문을 연 지는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식 중 한 가지 재료라도 유기농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한식당 ‘이랑’의 신념은 어느 곳보다도 대단하다.

이랑의 모든 재료는 ‘한농마을’이라는 천연유기농 생산단체에서 공급받고 있다. 무농약, 무제초제, 무화학비료를 의미하는 3무 농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으로 이미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신뢰를 얻은 곳이지만 식당을 통해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랑이라는 식당의 이름도 ‘자연이랑 사람이랑’에서 따 온 말이다. 때문에 이랑에서 맛 보는 모든 음식은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파나 마늘 등의 향신료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된장이나 고추장도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 아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내놓는다.

상추나 깻잎, 치커리도 쭉쭉빵빵(?)은 아니다. 간혹 벌레 먹은 잎사귀를 발견할 수 있지만 무작정 불쾌해 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농약을 주고 쉽게 길렀다면 보기엔 좋았어도 몸에는 빵점 짜리 음식이 될 테니 말이다.

이랑의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심심하고 밋밋한 맛에 ‘맛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쉰이 넘은 손님들이 오면 ‘이 맛이 진짜’라며 흡족해 한단다. 어떤 손님은 야채와 막장이 아까우니 남은 것마저 싸달라고 할 정도니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은근한 맛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랑에서 선보이는 메뉴는 더덕구이정식과 버섯된장찌개, 산채비빔밥 정도다. 재료 공급의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장마나 가뭄이 들 때에는 원하는 음식을 모두 서비스할 수는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 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정갈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다면 이랑 정식을 권한다. 호박죽이나 들깨죽으로 입맛을 돋군 다음, 샐러드, 모듬나물, 송이불고기와 함께 된장찌개와 밥을 서비스한다.

그리고 디저트로 내놓는 상큼한 차 한잔이면 이보다 더 훌륭한 만찬은 없을 듯 싶다. 버섯된장찌개는 고기와 해산물은 뺀 채 오로지 야채와 자연발효된장만을 이용해 먹음직스럽게 끊여낸다.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 맛이 찌개보다는 국에 가깝지만 먹고 난 후에 속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랑의 내부, 외부 인테리어도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주변의 한옥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래 있던 2층 건물을 개조한데다 마당 한쪽은 손을 대지 않아 자연미가 그대로 묻어난다. 내부 역시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식사를 하며 작은 식물원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다.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도 이랑의 운치를 더해준다.

레스토랑 1층 한편에서는 한농마을에서 생산되는 야채류와 야생의 닭이 낳은 달걀, 된장, 고추장, 숯제품 등이 판매되고 있는데 전체 매출의 약 20% 정도를 차지한단다. 1층은 직장인을 위한 일품요리를 중심으로 서비스하고 2층은 가족이나 단체모임 장소로 적합하다. 2층은 9월에 오픈 할 예정이다.


▶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걷다보면 신한은행이 나온다. 좌회전하면 왼편으로 2층집의 이랑이 보인다.


▶ 메뉴 : 유기농산채비빔밥 7,000원, 더덕정식 15,000원, 이랑정식 18,000원. 차와 쥬스는 6,000∼8,000원 선. 솔잎쥬스, 더덕쥬스, 스테미너쥬스 등은 9월부터 판매 예정. www.iirane.com ☎02-765-2035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8/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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