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고스톱狂의 전설같은 이야기

오래전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축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장례식을 치루면서 고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참 따뜻하게 그려냈다라는 느낌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제목이 던져주는 선명한 의도대로 영화 속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밝고 따뜻하고 쾌활한 축제처럼 펼쳐져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픈 장례식이 아니라 삶의 건강한 연속성을 드러내며 끈질긴 생명력이 얼마나 싱싱한 것인지 솔직하게 드러내주고 있었다.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이 슬픔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강렬한 삶의 욕구를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발전적인 축제의 장으로 표현된다.

영화 축제를 떠올릴 때마다 같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셔 문상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고인을 뵌 적은 없었지만 평소 후배를 통해 할아버님의 소식을 몇번 들었었다.

“형, 우리 할아버지는 85살이 넘으셔서 다시 검은 머리가 나오는거야. 눈도 밝아지셨는지 돋보기 없이 신문을 읽으셔.”

그런 할아버님이 아흔 둘에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호상이라고 자식들이 허허 웃어가며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문제는 내 후배가 언더그라운드의 록밴드를 하던 놈이었는데 그룹 멤버들이 문상을 와서는 자기들이 운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처음엔 기특하다고 얼떨결에 허락을 하신 어른들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놈에, 질끈 묶은 놈에, 찢어진 청바지와 징 박힌 말장화를 신은 젊은 사내 녀석들이 운구를 하면 또래가 죽었나보다 생각하지 누가 감히 아흔 둘의 할아버님 장례식이라고 여기겠는가.

결국 어른들의 정중한 거절로 무산되긴 했지만 하마터면 동네 구경거리 날뻔 했다.

후배의 멤버들처럼 좋은 의도가 본의와 다르게 나타나 당황스러운 경우도 많다. 특히 개그맨들이 문상을 갔을 때 난처함과 민망함을 느꼈다는 얘기를 가끔 전해 듣는다.

엄숙하고 슬픔에 잠겨있어야 할 장례식장에 개그맨들이 문상을 하러 나타나면 다른 문상객들이 이유없이 웃어대는 통에 아주 죽을 맛이란다. 문상객이야 그렇다 쳐도 방금 전까지 ‘아이고, 아버지’ 라며 눈물을 흘리던 상주들이 맞절을 하면서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려서 양쪽이 무지하게 민망해져서 엉거주춤 서있었다는 모 개그맨의 증언도 있다.

문상을 가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고스톱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함께 밤을 새워주는 미풍양속이 때로는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개그맨 A가 문상을 갔을 때의 일이다. 깍듯한 예의를 차려 상주와 인사를 하고 나서 곧바로 고스톱 판을 벌였다. 워낙 고스톱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한번 주저앉으면 날밤을 새며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아침이 될 때까지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어느덧 장지로 떠날 시간이 됐다. 운구가 떠나기전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는데 한참 끗발이 오르고 있던 터라 패를 털 수가 없었다.

“야, 니네들 요판 그대로 들고 따라와.”

A의 엄명에 따라 같이 치던 사람들은 화투패를 그대로 펼쳐 든 채 영안실 밖 운구차 앞까지 따라 나왔고, 화투패를 움켜쥔 A가 절을 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판을 계속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흘러나왔다.

이미 곁을 떠나간 친척과 지인들을 떠올리면 어느새 옅어진 슬픔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 ‘나 열심히 살다가 왔어’라고 말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면 그의 이기적인 변명일까…

입력시간 2002/08/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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