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 이상은, '자유의 날갯짓'

환상무대 '초승달 파티' 로커의 진면목

무대가 좁았다. 마지막 앵콜곡은 ‘담다디’였다. 그러나 추억 속의 로큰롤 버전이 아니었다.

댄스 클럽에서나 어울릴 법한 테크노를 뺨쳤다. 이상은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뛰었고 관객은 무대 앞으로 몰려나왔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홀엔 격렬한 드럼 비트와 DJ가 직접 출연해 가세한 스크래칭 소리가 넘쳐 흘렀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 확인

8월 17, 18일 이틀 동안 벌어진 이상은의 콘서트 ‘초승달 파티’는 발라드에서 록까지 최근 그가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환상적 조명까지 가세했던 이날 무대는 그러나 댄스 음악은 철저히 배제해 ‘진보적 로커 이상은’으로서의 입지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그곳은 지난해 12월 그의 송년 콘서트가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날은 탬버린을 흔들며 ‘담다디’를 신나게 불러 줘 옛모습에 팬들을 송년 파티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일반 콘서트장에서 들을 수 없는 갈매기 울음 소리가 퍼지면서 무대 전면에 걸어 둔 대형 TV 스크린에서는 초승달과 나무 등 자연의 영상이 펼쳐졌다.

그가 최근 들어 자연과 환경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부쩍 허스키해진 고음으로 부르는 신곡들의 가사에서는 새와 태양 등 자연의 이미지가 유독 강하다.


한국적 정서 깔린 실험적 몸짓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록, 레게, 테크노 등 서양 어법으로 변주해 나간 실험성이 돋보였다. 무용에서도 서양식 춤을 거부하고 더러는 탈춤의 몸짓 같기도 했고 더러는 상모를 돌리는 몸짓이 선보였다.

우리의 고대 설화에서 따온 발라드 ‘공무도하가’에서는 여성 관객들이 두 손을 합장한 채 따라 불렀다.

“평상시 얼마나 억눌렸어요?” 이 말이 신호인 양 자리에 앉아 있던 200여 관객들은 무대와 객석 사이 빈 공간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조명은 테크노 댄스 클럽 같은 몽환적 분위기로 변해 맨 앞에 나가 춤추던 관객들의 마음을 부추겼다. 이상은이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면 객석도 그대로 했다.

“쪼끔 재밌게 노셨나요? 놀았으니 바닷가에 와 있는 듯한 노래 하나 불러야 할 것 같네요.” 고즈넉한 해변의 영상이 펼쳐지면서 이상은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가라앉혀 노래에 빠져 들게 했다.

그러나 트릭이었다. 곧 바로 격렬한 테크노 음악이 흘렀고 이상은은 미친 듯 머리를 흔들어대는 헤드 뱅잉을 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이상은의 음악적 진보성은 막간의 초청 무대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언더그라운드 밴드인 ‘어어부 프로젝트’가 펼쳐보인 두 곡이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괴성에 가까운 보컬, 굉음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인 소음 등을 구사해 마니아 팬에게만 다가서는 얼터너티브 록 그룹을 초청한 것은 이상은의 음악적 진보성과 마주치는 부분이다.

그가 새 음악에의 탐색을 멈추지 않는 것은 자신이 해 보지 않았던 음악 형식들에 대해 열려 있는 덕택이다. 공연 후 이상은은 “마니아들만을 위한 클럽 음악에서도 어쿠스틱한 서정성을 발견했다”며 아이슬랜드의 록 그룹 뵤크(Bjork)의 곡들을 예로 들었다.


유럽클럽문화의 자유에 매료

그는 1998년 일본 EMI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의 애칭을 리체(Lee Tzsche)라고 부른다. 철학자 니체의 이름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성씨인 이씨와 최씨를 하나씩 따 만든 페미니즘적 이름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가요뿐 아니라 미술과 문학 등 인접 장르에도 재능을 보여 왔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지구는 문명이 앞으로 나아 갈 바를 찾고 있다”며 “이제는 자연이 아니면 최첨단 기술 만이 남아 지구의 운명을 가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직후인 19일 그는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0년 8월부터 1년 동안 런던의 첼시 칼리지 회화과를 다닌 그는 그곳의 자유로운 클럽 문화를 잊지 못 한다. “유럽 여행을 하며 다음 작품들을 준비할 계획이에요.” 여전히 선머슴처럼 웃는다.

이번 공연을 신호로 인터뷰나 방송 등 대외 활동은 일체 중지하고 다음 작품에 몰두할 것이라고 측근은 전했다. 새 앨범은 2003년 초에 발표될 예정이다.

장병욱 기자

입력시간 2002/09/03 14:41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