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고객중심 사회로의 변화

"증권사의 사이버거래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는 별도로 지나친 사이버 수수료 경쟁이 증권사의 수익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업계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S증권사의 사장이 영업 방향의 전환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나는 이 짧은 말에서 요즘 사업 세계를 뛰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증권사의 주요 수입원인 거래 수수료율을 0.025%까지 낮춘 회사까지 등장하고 있다. 일반 영업점 요금의 20분의 1까지 내려간 셈이다.

반면에 대형 증권사들은 홈트레이닝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해 매년 100, 2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게다가 2, 3년에 한번씩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최대 500억원까지 쓰고 있다. 결국 대형사 위주로, 온라인 거래 위주로 시장이 재편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 뿐만 아니라 대다수 업종에서 가격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힘은 완전히 소비자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안방마다 큼직한 몇 개의 증권사를 갖고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며칠 전 잘 알고 지내는 S대학 경제학과의 교수를 만났다. 경제학과의 인기가 옛날 같지 않다고 한다. 학생들의 기호가 변한 탓인지, "이게 학생들은 어려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서울이나 인근에 있는 학교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 한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앞으로 경제학과를 폐지하거나 정원을 줄여야할지, 그리고 정년이 단축되지나 않을지를 걱정하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경제학과는 정말 인기가 있었던 학과였다.

학생들의 기호 변화는 바로 시장 환경의 변화를 뜻한다. 그것은 실용 학문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비 실용 학문에 대한 수요의 감소라는 시장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면 한이 없다. 시장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몇몇 은행의 대출 업무를 비교해 볼 기회가 있었다. 표면에 드러난 가격이 아니라 실제로 각각의 은행들에게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리고 업무는 어떻게 추진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마디로 옛날의 은행은 아니었다.

자금은 풍부하고 돈을 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은행들은 소비자금융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은행마다 가격과 스피드 면에서 큰 차이를 볼 수 있었다. 가격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고객들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스피드를 하나의경쟁력으로 채택하고 있는 은행도 있었다. 과거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금리로서 치열하게 스피드 경쟁을 전개하는 시중 은행들을 보면서 시장의 논리, 자본의 논리 그리고 경쟁의 논리가 얼마만큼 대단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해 할 수 있었다.

요사이 내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세가지 사건은 각각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증권, 대학 그리고 은행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의 밑바닥을 흐르는 실체와 교훈은 무엇일까. 세상의 겉으로 보기엔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것 같지만 현상의 본질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모든 업종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객 중심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보수적인 곳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대학 조차도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부터 성역으로 오래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을 제공하든 공급자나 생산자가 늘 고객의 필요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세상으로 우리는 달려가고 있다.

고객중심의 사회는 앞으로 더욱 더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조직, 정부 모두가 당면하고 있는 변화의 실체는 바로 고객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있다. 승자들은 이런 변화에 주도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지금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객의 눈높이에 철저하게 맞추라'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조직은, 당신의 나라는 충실히 이런 원칙에 따르고 있는가? 만일 '아니오'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시간 2002/09/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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