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 산] 주흘산

영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개는 모두 3개가 있었다. 새도 넘기 힘들다는 새재(조령), 죽을 힘을 다해 넘어야 한다는 죽령, 가을 바람만 왕래했다는 추풍령이다. 이제는 모두 옛길이다. 추풍령에는 고속도로(경부)가 놓여졌고, 조령은 일제가 개척한 이화령이 역할을 대신했다. 죽령길은 지난 해 밑으로 고속도로(중앙) 터널이 뚫리면서 기능을 잃었다.

이중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했던 ‘고품위’ 고개는 단연 새재였다. 죽령은 워낙 길이 험했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재에는 산짐승과 도적이 많았다. 닷새나 열흘 단위로 사람들을 모아 재를 넘어가야 했다. 새재 동쪽에 버티고 있는 산이 바로 산짐승과 도적들의 소굴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름은 주흘산, 높이는 해발 1,106m이다.

과거에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을지 모르나 이제 주흘산은 경북 문경시의 진산으로 많은 산꾼들이 찾는다. 역사유적이 많고, 특히 활엽수가 많아 가을 단풍을 보는 맛이 괜찮다.

조령 제1관문(주흘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열려있다. 녹음이 짙은 숲길을 약 10분 걸으면 오른쪽으로 여궁폭포가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면 고찰 혜국사가 나온다. 신라 문성왕 8년(846년)에 창건된 절이다.

원래 이름은 법흥사였는데 고려말 공민왕이 거란의 침략을 피해 이 절에서 지낸 후 ‘흔혜를 많이 입었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절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안적암.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곳이다.

길은 바윗길과 흙길로 연이어 바뀐다. 흙의 색깔이 심상치 않다. 비옥해 보인다. 더덕과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한다. 다른 산에서 보기 힘든 계피나무와 오미자나무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8부 능선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하산하는 길, 계속 오른쪽으로 올라야 정상에 닿는다. 길이 험해진다.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급경사와 아찔한 절벽길도 만난다. 드디어 정상.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조망이 좋다. 서남쪽으로는 조령산이, 동남쪽으로는 문경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다시 올랐던 길로 내려와 갈림길에서 조령 제2관문(조곡관) 쪽을 택한다. 가파른 곳을 벗어나면 계속 계류와 함께 한다. 물소리가 좋다. 중간에 깎아놓은 듯한 수천 개의 자연석탑과 만난다. 산꾼들이 근처에 돌을 올려 놓아 인공탑도 만들어 놓았다. 갈림길에서 약 1시간 30분을 걸으면 조곡관이다. 매우 낯이 익은 성문이다.

우리 방송 사극 중 성문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분장을 한 유명 탤런트 등 촬영현장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아직 지치지 않았다면 내친 김에 조령 제3관문(조령관)까지 올랐다가 내려온다. 약 2시간 정도를 더 투자해야 한다.

등산이 아니라 가족 동반 여행이라면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새재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이다. 느릿느릿 걷고 중간중간 쉬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길 중간에 재현해 놓은 옛 주막집, 사람들이 돌을 쌓아 만든 석탑, 계곡의 폭포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또 하나의 명물은 새재 입구에 만들어 놓은 왕건 촬영장. 사극전용 세트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연인원 3,000여 명이 동원돼 2만여 평의 부지 위에 세 개의 왕궁과 귀족촌, 민가를 세웠다. 7명의 학자가 고증을 했다. 가족 나들이는 물론 단체 답사지로도 인기가 높다.

권오현 차장

입력시간 2002/09/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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