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배초향

예전에 시골마당 한 켠에 소리없이 자라던 풀이 있다. 잡초인지 농사짓는 식물인지 구분도 않고, 밭인지 화단인지 경계도 없이 대강 크고 있다가,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을 일이 생기면 갑작스레 생각나는 풀 바로 배초향이다.

남쪽지방 사람들은 방아잎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 필자는 오래 전 백두산을 찾아가다 두만강 물줄의 하나라는 곳에 잠시 쉬었는데 서너 사람이 모여 냄새만으로도 식욕을 충분히 자극할 정도의 매운 생선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바로 배초향 잎을 넣고 있지 않은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말을 건네니 경상도가 고향이라는 동포들이었다. 고향을 떠난지가 오래되어 세대가 바뀌었는데 방아잎을 챙기는 것을 보니 한 식구란 생각이 들어 명치끝이 찡했던 기억이 있다. 그 배초향이 늦은 여름 막바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배초향은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 살이 풀로 한 번 심어 두면 두고두고 잎을 얻을 수 있으며 늦여름부터 가을내내 고운 꽃구경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이웃한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산아래 낮은 곳에서부터 1,000m가 넘는 높은 산정상까지 분포하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서 자란다. 다 자라면 1m쯤 되는데 많은 가지를 만들어 내고 가지마다 잎과 꽃이 매달린다.

꽃 한송이의 크기는 1cm도 안 될 만큼 아주 작고, 게다가 잎술 모양의 길쭉한 꽃송이는 반쯤은 꽃받침 속에 가려져 있지만 그래도 이 작은 꽃송이들은 10cm정도의 원기둥 모양으로 둥글게 둥글게 모여 달린다.

꽃빛깔은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보라색이며 꽃잎보다 더 길게 수술이 나와 있다. 우리가 먹는 잎은 길쭉한 심장모양으로 생겼으며 두장씩 서로 마주 나는데 길이는 5~10cm정도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10월쯤 꽃차례 모양 그대로 익는데 꽃이삭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앞에도 말했지만 배초향은 이 이름보다는 방아잎으로 더 널리 알려 있다. 그 이외에도 방애잎, 깨나물, 중개잎, 야박하, 참뇌기, 곽향(藿香), 토곽향, 어향(魚香), 인단초(仁丹草), 가묘향(家苗香) 등의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아마 그 이름의 가지 수 만큼이나 우리 민족과 가까운 식물일 것이다.

배초향 종류에 붙이는 라틴어 속명이 아가스타케(Agastache)로 매우 강한 이란 뜻을 가진 ‘aga’와 이삭 이란 뜻을 가진 ‘stachys’의 합성어이고 보면 배초향의 꽃차례와 열매이삭이 매우 특징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배초향은 향신채 음식에 잘 이용해 왔다. 식물체 자체에서 방향성 냄새가 나므로 매운탕이나 추어탕 같은 음식에 넣어 끓이거나 생선회와 곁들여 먹으면 생선 비린내를 없애 준다.

또 고기를 싸서 먹거나 봄철에 어린 순을 데쳐서 여러 번 우려서 무쳐 먹으면 깻잎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부드럽고 독특한 향기가 그만이다. 쉽게 말해 우리 토종 허브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잘 말려서 차로 마시면 훌륭한 허브차가 된다.

한방에서도 여러 중상에 이 풀을 이용한다. 우리가 이용하기 쉬운 방법으로는 입안에서 냄새가 날 때 이물로 양치를 하면 좋다. 물론 꽃을 보기 위해 심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키가 큰 편이므로 햇볕이 드는 정원 가장자리에 심어도 보기 좋고 꽃꽂이용으로 잘라 이용할 수 있다.

서울토박이인 내게도 배초향 꽃 피는 고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9/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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