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개그펀치] "와중에도 본전생각은 나더라"

얼마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두 명의 여성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 30대 중반쯤 되보이는 두 명의 여자는 여고 동창생으로 한 명은 전업주부였고 한 명은 독신여성이라는 걸 대화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야, 며칠전에는 재취자리가 다 들어오더라.”

“어머머, 너 딱 죽고싶었겠다.”

“별로… 조건만 괜찮으면 재취면 어떠니?”

“너 결혼할 마음은 있니?”

“별로 없는 게 문제지. 이젠 누굴 만나서 작전 짜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다 귀찮아. 키스는 언제 할까, 저놈이 자자고 하면 순순히 응해줘야 하나…그리고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면 그 내면이 다 보이는 게 정말 큰 문제야. 너처럼 눈에 뭐가 씌웠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해야지 나처럼 나이 먹으면 점점 힘들어져. 어쩌다 누가 데이트 하자고 하면 안받는 화장 할 생각에 짜증만 난다니까.”

그 독신여성의 말이 얼마나 솔직하고 절실하던지 나는 순간적으로 ‘맞아요, 정말 그렇겠군요.’ 하고 맞장구를 칠 뻔했었다.

우연인지 그날 오후에 제법 친하게 지내는 여자 연예인인 A와 우연히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A 역시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상태라 나는 지하철에서 엿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A는 한숨을 푹 쉬며 깊은 공감의 표시를 나타냈다.

“우리 엄마도 나더러 자꾸만 선보라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 얼굴 팔린 직업 때문에 결혼한다고 하면 신랑이 뭐하는 사람인지 다 알려질텐데… 사람이나 사랑 하나 믿고 결혼할 수도 없고… 연예인이니까 아무나 함부로 만날 수도 없잖아. 오빠가 괜찮은 남자 하나 소개시켜주라.”

연예인들은 의외로 외롭다. 마음껏 이성을 사귀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매우 힘들고 어렵게 치러낸다. A의 말처럼 얼굴 팔린 죄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이상하게 오르내릴까봐 가벼운 연애도 진지한 연애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예인 B군도 한창 이성과 사귈 나이이지만 그러질 못한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도 힘들지만 어쩌다 나이트에 놀러 가서 부킹을 해도 매우 조심스럽게 몸을 사린다. 흔한 말로 부킹 상대의 전화번호를 따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지만 딱 그 자리에서 끝낸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흘리는 경우도 절대로 없다. 농담으로 ‘고자’냐고 놀려댔는데 B의 말이 걸작이었다.

“나라고 왜 마음이 안땡기겠어요? 근데 사람이 무서워. 혹시라도 사이코같은 여자한테 걸려서 혼인빙자간음으로 뒤집어 씌우면 나만 개쪽 나는거잖아.”

B처럼 지레 겁먹고 철두철미하게 몸조심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예인 C군처럼 적극적으로 이성을 사귀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C는 요즘 제법 잘 나간다는 남자 연예인이다. 성격이 화끈하고 솔직해서 따르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지만 일정한 거리를 둔다. 대신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여자들에게는 적극적이다. 착하고 성실한 여자친구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데 얼마전에 드디어 그런 여자를 찾았다고 희희낙락이었다.

카페에 갔다가 너무 예쁘고 참해보여서 한눈에 ‘필’이 꽂혔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자랑 끝냈다고 선언을 했다.

“걔 생일이라고 해서 양주에 비싼 선물에 다 해줬거든. 분위기도 잡혔고 해서 호텔에 들어갔는데…기가막혀서…몸을 더듬는데 나랑 똑같은 게 달려있는 거야. 그 동안 감쪽같이 속았어. 진짜 몰랐다니까. 게이를 만날 줄이야.”

“그래서 호텔에서 그냥 나왔어?”

“그러려고 했는데 호텔비며 양주값에 선물에… 투자한 돈이 너무 아깝잖아.”

“그래서?”

“사실 한번 하러 간 건데 게이랑 어떻게 해? 대신 ‘야, 빨어’ 했지.”

충격을 딛고 본전생각을 해낸 C군의 순발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입력시간 2002/09/06 15:1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