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년] 뉴욕 금융시장은 유대와 아랍계의 대결장

미국의 이라크 공격 본격화 땐 '자본격돌' 격화

지난해 9월 18일, 아침 출근 시간에도 뉴욕 맨해튼 FDR 강변도로가 텅 비었다.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으로 붕괴된후 맨해튼에 근무하는 화이트컬러층이 제2 테러를 두려워하고, 뉴욕 경찰들이 도로를 삼엄하게 통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은 유대인들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였다.

미국의 공식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은 민족 명절인 이날을 휴일로 삼아 업무를 중단했다. 출퇴근 시간에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맨해튼 도로가 시원하게 뚫렸다는 것은 유대인들은 뉴욕 월가에 핵심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9월 11일 미국 역사상 초유의 테러가 발생하자 뉴요커들 사이에는 유대인과 아랍인을 둘러싸고 온갖 루머가 난무했다.

테러 참사가 유대인 명절인 로쉬 하샤나 데이를 앞두고 계획됐다는 설과 유대인들이 명절을 보낸 후 뉴욕 주가를 띄울 것이라는 설 등이 근거없이 떠돌면서 월가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유대자본에 대한 공격

테러리스트들이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한 것은 세계초강대국의 심장부를 겨누었다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분명했지만, 민간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의 고층빌딩을 타깃으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미국의 자본주의였고, 그 핵심에서 움직이는 유대인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1월 20일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차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테러는 세계금융시장을 붕괴시키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회복했다. 우리는 시장에 기초한 경제시스템을 건설, 인류역사에 번영을 가져와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아랍계 TV 방송에 방영된 녹화 테이프에서 빈라덴은 유대인과 이를 보호하고 있는 미국을 공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테러는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세계금융시장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를 강타했다. 100층짜리 고층 빌딩 2개 동이 무너지면서 뉴욕증시는 4일간 휴장하고, 다음주 월요일인 17일에 다시 문을 열었었다.

하지만 1주일 동안에 다우존스 지수는 14.5% 폭락, 1929년 대공황 이래 주간단위로 70년만에 최대 폭으로 폭락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금융시장이 테러집단의 의도대로 붕괴되기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선 아랍계 테러의 공격을 받은후 유대인 큰손들이 금융시장을 통해 테러세력에 대해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미확인 루머가 돌고 있었다. 5년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주장했듯이 뉴욕 월가가 유태인의 생각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로시 하샤나 명절을 보낸 다음주 월요일인 24일 오전 9시. 뉴욕 증시 개장 30분 전이었다. 골드만 삭스의 여성 애널리스트 애비 코언이 총대를 잡았다. 그녀는 투자자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궐기하라, 그리고 지금 주식을 사라.(Stand up, and it’s time to buy stock.)”

골드만 삭스는 19세기 미국 금융시장을 초기 정착민인 앵글로 색슨계가 잡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설립한 대표적 투자은행이며, 월가 최고의 여성 애널리스트로 꼽히고 있는 애비 코언도 유대인이다.

골드만 삭스가 나서자 뱅크오브어메리카 등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이 뒤를 이어 주식 매입에 동참했고, 월가 투자자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밴드웨건(band wagon)’ 현상이 나타났다. 기관에 이어 개인들도 매수 물결에 합류했다. 여기에 미국의 애국주의가 가세했음을 물론이다.

뉴욕 증시는 코언의 신호를 계기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해 유대인들의 또다른 명절인 욤키퍼 데이(9월 29일)를 보낸뒤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섰다. 2개월후인 11월말에는 뉴욕증시는 테러후 저점에서 20% 이상 상승하는 이른바 ‘황소장세(bull market)’에 돌입했다.


뉴욕증시 재건…유대인의 힘 입증

테러 직후에 뉴욕 금융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유대인이 집단적으로 움직였다는 미국 내 보도나 증언은 없다. 미국 사람들은 설령 이 같은 풍문이 믿을만한 정황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추어 질 수 있어 보도는 물론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조차 피한다.

물론 상황적으로 보면 미국인들이 애국심으로 단결해 테러를 극복해나가는 가운데 유대계 금융인들이 증시 살리기에 동참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테러 공격을 당한후 뉴욕의 유대인 커뮤니티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세계무역센터 붕괴로 많은 유대인들이 숨졌기 때문이다. 사망 확인자 가운데 10% 정도가 유대교 장례를 희망했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3,000명에 이르는 사망 추정자 가운데 300명 이상이 유대인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뉴욕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유럽에 살던 많은 유대인이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의 대량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들은 뉴욕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미국 동부 지역에 밀집해 있다. 그들은 뉴욕 금융가에 많이 진출해 있고, 그 중 상당수가 세계무역센터에 근무하고 있었다.

미국 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지만 미국 사회의 주요포스트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방부엔 월 포비츠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 리처드 펄 차관보가 유대인이고, 정계에는 조지프 리버만, 척 슈머, 존 코자인 상원의원등이 그렇다.

경제계엔 그 비율이 더 높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티그룹의 샌포드 웨일과 로버트 루빈 회장, 메릴린치의 데이비드 코만스키 회장,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이 유대계이고, 골드만 삭스, 리먼브러더스,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월가를 움직이는 굴지 투자은행들은 유대인들이 창업한 회사다.

또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언론은 유대 가문의 소유이고, 하버드대 로렌스 서머스 총장, 경제학자 폴 사뮤엘슨도 유대민족의 일원이다. 영화감독 스트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동족이 독일에서 학살됐던 역사를 영화로 만들었고, 할리우드은 유대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해 9월 테러 이후 미국 정계와 경제계에 유대인이 뜨고 아랍과 인도 및 파키스탄계가 지는 현상이 빚어졌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지만, 앵글로 색슨족 계열의 백인(WASP)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한 전쟁이 진행되면서 유대계들은 미국의 재건을 위해 앞장서 뛰는 반면 중동계 또는 인도계 출신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테러후 뉴욕 재건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루돌프 줄리아니에 이어 뉴욕 시장에 당선된 경제통신사 오너 경영인 출신의 마이클 블룸버그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재무장관을 맡았던 로버트 루빈 시티그룹 회장은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테러후 부시 행정부의 긴급 경제대책 골격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부시 행정부가 루빈 전 장관을 워싱턴에 불러 협조를 구한 것은 민주당을 의식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뉴욕 월가의 유대 그룹의 지지를 받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비해 중동과 인도ㆍ파키스탄계 경제인들은 겉으로는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했지만, 미국인들의 보이지 않는 경계감의 대상이 됐다. 미국 2위 자동차 회사인 포드자동차의 자크 내서 사장은 테러 이후 오너인 포드 가문에 의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주주인 포드 가문은 경영 악화를 명분으로 들었고, 미국 언론들도 내서 사장의 퇴진에 대해 인종적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서(아랍식 발음으로 나세르)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가 레바논이었다는 사실에서 그의 경질에 무언가 의문이 생긴다.

경제전문잡지인 포천지에 따르면 내서 사장 축출이후 포드 가문의 선두주자인 윌리엄 포드가 회장겸 CEO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포드 자동차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 시티그룹의 루빈 회장의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시티그룹의 최대주주인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는 세계무역센터 붕괴로 인한 희생자에게 1,000만 달러의 헌금을 하겠다고 뉴욕시에 제의했으나, 줄리아니 시장은 시민의 정서를 의식해 완곡하게 거절했다.

서포트 닷컴이라는 인터넷 회사의 CEO인 라다바수는 인도 출신으로 USA 투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미국인들처럼 뜨거운 애국심을 느낀다”고 밝혔지만, 보이지 않은 인종차별이 걱정돼 회사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지워버렸다.


미국 떠나는 아랍계 자금

그러나 뉴욕 월가에 투자돼 있는 아랍계 자금은 테러 이후 아랍인에 대한 인종편견이 심해지면서 미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지는 최근 지난해 테러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의 개인투자자들이 최고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미국 시장에서 빼냈다고 보도했다.

FT의 보도가 다소 과장이라고 하더라도 상당 규모의 아랍계 자본이 미국을 떠나 안전한 스위스 은행 또는 금 시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계 산유국들이 기름을 팔아 번 오일달러를 해외에 투자한 규모가 1조3,000억 달러에 이르며, 이중 사우디가 7,500억 달러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뉴욕증시의 시가총액이 10조 달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아랍계 자본이 엄청난 규모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돈의 상당수가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대량으로 미국을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뉴욕 증시는 지난 7월 연이은 기업회계부정 사건으로 9ㆍ11 테러 직후 저점 이하로 떨어지는 등 5개월째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고, 같은 기간에 달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사우디 자금의 이탈로 달러가 하락하고 미국 경제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사우디 자금의 미국 이탈이 올들어 뉴욕 증시와 미국 달러 하락의 주 원인이 아니다. 미국 경제가 올들어 두번의 침체를 겪는 이른바 더블딥(double dip) 과정에 빠져들 우려가 높아지고, 계속 터지는 기업 범죄 뉴스가 투자자 마인드를 위축시킨 것이 금융시장 불안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아랍계 자본이 올들어 월가 추락의 파도를 타고 이탈함으로써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테러후 지난 1년 동안에 세계 시가총액 절반의 유동성이 움직이는 뉴욕 금융시장에서 유대계와 아랍계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이 대결은 앞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층 가열되고, 세계 석유시장에도 그 불똥이 튈 전망이다.

김인영 서울경제신문 뉴욕특파원

입력시간 2002/09/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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