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정당정치의 위기

대선을 몇 달 앞둔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향후 한국 정당정치의 불안정성은 대단히 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역주의정치가 한편으로는 유지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체되는 이중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금도 여전히 지역주의의 최대 수혜자이다. 호남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많은 유권자를 가진 영남의 주민들이 반(反)김대중정서로 똘똘 뭉쳐 이회창 후보를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의 호남지역과 자민련 지지의 충청지역은 대통령 후보 문제를 놓고 분명치 못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지역주의가 동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당정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독재시대의 정당정치는 대체로 양당제의 골격이 유지되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사르토리(G. Sartori)가 말하는 ‘일당 우위 정당제’라고 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집권여당과 이에 대립했던 야당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여당은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거대 여당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당제를 ‘1.5당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독재시대의 이 같은 양당제 경향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정치가 전격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87년 이후 여러 차례의 선거가 있었지만 그 결과는 사실 지역주의 위에서의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의 결과였을 뿐이다.

1987년 12·16 대통령선거는 정확히 4당 분할의 지역선거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1992년 12·18 대통령선거는 민정당·통일민주당·공화당 3당 합당의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대를 통해 김대중이 당선되었던 1997년 12·18 대통령선거 또한 영남 중심의 지역패권연합에 대해 호남과 충청의 지역등권연합이 대항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이행 이후의 지역주의정치는 지역주의 위에서 지역대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되었던 정당정치였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에 의해 선거 결과가 좌우되었던 지역주의정치는 현재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에 동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DJP공동정권이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대통령 아들의 권력 비리문제와 김대중 이후의 호남지역을 대표할만한 정치인의 부재로 인해 동요하고 있고 자민련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비민주적 정당정치와 부패정치에 대한 반발로 인해 그 동안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젊은 층 중심의 비지역적 유권자들의 규모가 커졌고,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태도가 매우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지역주의정치에 의해 제도권정치로의 접근이 어려웠던 민주노동당의 선전도 지역주의정치를 동요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지역주의정치의 변화는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주의정치 이후에 새롭게 등장할 새로운 정당체제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정치를 예고하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국민경선으로 자신의 대통령 후보를 선정한 바 있는 민주당이 단지 당선 가능성의 이유만으로 후보 교체를 감행하고자 했을 때 그것은 당의 분열과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몽준의 민주당은 정말 어색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독재정권에 저항해왔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 대해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외쳐왔던 민주당의 정체성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정치에서 민주당의 분열과, 나아가 그로 인한 해체 가능성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아마도 커다란 공백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당장 우리 사회의 보수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을 견제할 세력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민주당의 가치는 집권시보다 집권하지 못했던 당시에 더욱 그 빛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권정권과 그 여당에 대해 나름의 견제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민주당의 분열 현상과 그 정체성 상실은 민주당의 가장 커다란 위기이며, 한국 정당정치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가장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교수ㆍ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10/04 15:0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