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닥터 코르작

고아들에게 쏟은 유태인의 감동적 사랑

베네딕도 미디어(02-2279-7429)는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시청각 종교 교육 연구회 대표인 임 세바스찬 신부님이 꾸려가는 비디오 제작사이다.

독일인인 임 세바스찬 신부님은 국내 상업 비디오 제작사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작품 판권을 꾸준히 사들인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 7의 봉인>과 <산딸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와 <안드레이 루블로프>, 마리아 루이사 벰베르끄의 <나는 모든 여자 중에 가장 형편없는 여자>,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크쥐쉬토프 키쉴롭스키의 <십계> 시리즈 등, 종교를 초월한 걸작 목록이 즐비하다.

신부님 혼자 꾸려가는 탓에 광고, 영업은 엄두도 못내지만, 좋은 영화 팬과 비디오 자료실을 꾸미려는 교육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베네딕도 미디어의 최신 출시작은 안제이 바이다의 1990년 작 <닥터 코르작 Korczak>(12세)이다. 안제이 바이다(1926-)는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국내에는 프랑스 혁명기를 무대로 한 <당통>과 독일군 포로와 사랑에 빠진 폴란드 여성의 비극을 그린 <아이 원트 유> 두 편만 비디오로 소개되었다. 그나마 많이 잘려 바이다 감독의 명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레지스탕스 출신인 바이다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공산주의와 폴란드 자유 노조를 소재로 한 <재와 다이아몬드> <대리석의 사나이> <철의 사나이>로 폴란드 뉴 시네마를 이끌었다. 1989년, 자유 폴란드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바웬사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다.

<닥터 코르작>은 폴란드의 유명한 의사이자 교육학자, 작가였던 야누쉬 코르작 박사(1878년-1942년)의 어린이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흑백 영화다. 그 자신 유태인이었던 코르작은 유태인 고아들을 보살피는 어린이 집을 운영했고, 독일 침공으로 고아원을 게토 안으로 옮긴 이후에도 200여명의 어린이를 먹여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계속했다.

지인들의 탈출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버릴 수 없다”며 어린이들과 함께 열차에 실려가 1942년 8월 트레블링카 가스실에서 고귀한 생을 마감했다.

코르작의 생애는 <코르작 박사와 그의 아이들>이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폴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아그네츠카 홀란드가 시나리오를 썼다.

바이다 감독은 독일 출신의 명 촬영 감독 로비 뮬러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흑백 기록 필름과 같은 영상으로 코르작 박사의 생을 재현했다. 스크레치가 많고 초점도 이따금 흐려지는 화면은 마치 "이건 극 영화가 아닙니다"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또한 코르작만을 우뚝 세워 일방적인 영웅으로 만들지 않은 점도 <닥터 코르작>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코르작 박사(보즈시에크 프쇼니아크)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어린이를 사랑한다. 겉으로 드러난 희생을 보지 말라”는 멘트를 마치자 국장은 정치 상황이 나빠져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통보한다. 코르작 박사는 애원하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인간을 존중하느냐. 하물며 어린이를” 하고 화를 낸다.

성인이 된 옛 제자들이 방문하여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인문학이나 민주주의는 다 허상이었어요” 라고 울분을 토하자 박사는 “새로운 믿음이 필요한 때”라고 격려한다. 의과 수업 중에는 펄떡대는 어린이 심장과 앙상한 뼈 마디를 보여주며 “아이들로 인해 괴로울 때는 이걸 떠올리라”고 가르친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0/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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