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왜글'은 왜 하는가

누구나 자신만의 오랜 습관이나 버릇이 있게 마련이다. 상황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왠지 안하고 빠뜨리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버릇이자 습관이다.

골프에서 가장 흔한 습관 중의 하나로 왜글을 꼽을 수 있다. 왜글은 어드레스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샷을 하기 직전 그립을 바로 잡고, 굳은 근육을 풀 위해 하는 일종의 습관이다. 티샷이나 아이언 샷을 할때 왜글을 적절히 컨트롤 하면 긴장된 근육과 억눌렸던 마음가짐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일밙덕으로 골퍼들이 왜글의 맛을 느끼면 샷을 칠 때마다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괜히 볼이 안맞을 것 같은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왜글을 하는 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고, 안 하는 프로는 절대로 안 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왜글을 하고 싶지만 자칫 습관이 들까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한국오픈에서 스페인의 '샛별' 세르지오 가르시아가 세계 정상의 실력을 과시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앗다. 너무나 깔끔하고 간결한 스윙, 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폭발력, 겁 없이 대담한 공격성, 어느 누가 봐도 21세기의 타이거 우즈를 보는 듯한 놀라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차세대 골프계의 리더가 될 가르시아는 고질적인 왜글 때문에 종종 동반 선수가 갤러리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가르시아는 중요한 대회에서는 샷을 하기 전에 대략 20~30번 가량 왜글을 한다. 이처럼 그립을 잡았다가 다시 잡는 가르시아 자신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그처럼 해야 하는 자기 자신도 적잖이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불안한 마음에 더 좋은 샷의 리듬을 찾으려다 보니 왜글 수가 그렇게 늘어나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왜글을 하다 보면 자신도 얼마를 한 지 모르게 된다. 듣기만 해도 무서워진다. 프로 선수들 중에는 왜글을 안 하는 사람도 많다. 나라마다 특성이 있는데 타이거 우즈, 데이비드 듀발, 필 미켈슨 같은 톱 프로들은 왜글을 안한다.

유독 유럽 선수들이 왜글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닉 팔도, 콜린 몽고메리, 그리고 마스터즈 때 우즈와 플레이 한 디마카리오(이 선수는 무조건 더도 말고 꼭 2번 한다)등 유럽 선수들이 왜글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 선수들도 왜글을 많이 안 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 샷이 불안해 티업하기 전에 1번 정도의 왜글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습관처럼 안 하면 안 되는 선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가르시아도 왜글 버릇을 조금씩 고쳤으면 한다. 차라리 왜글을 고치기보다는 아예 왜글을 안 했으면 한다. 괜해 왜글 수를 줄이려다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중요한 샷이거나 긴장한 순간에는 평상시보다 왜글을 더 많이 한다. 따라 가르시아의 왜글은 좋은 그립을 잡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심적인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편이 더 정확하다.

가르시아의 경기 모습이 국내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걱정이 생겼다. 혹시 아마 골퍼들도 가르시아 같이 왜글을 따라할까 봐서다.

사실 왜글은 처음 하다 보면 리듬도 잡히는 것 같고 마음도 진정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골프에 큰 도움을 못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맨 처음 왜글을 시작할 때와 같은 효과를 못 가진다. 그래서 왜글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왜글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리듬을 찾기보다는 스윙하기 전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는게 훨씬 낫다. 모든 샷은 머리 속의 상상 속에서 시작된다고 할 만큼 상상력은 중요하다.

정신과 의사들도 미리 좋은 샷을 그려볼수록 더 좋은 샷을 칠 수 있다고 말한다. 정 왜글을 하고 싶다면 횟수를 정해 놓고 하자. 더 바람직한 것은 아예 왜글을 한 하는 것이다. 잘 치는 가르시아가 그 왜글 때문에 이토록 고생할지 누가 알았을까. 아마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10/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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