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미국 매파들의 속살 들여다보기

■ 승자학
(로버트 카플란 지음/이재규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

미국은 요즘 ‘막가파’같다. 환경 보호를 위한 교토 의정서의 파기와 요격미사일 제한협정 탈퇴에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 준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미국이 9ㆍ11 테러의 충격으로 이상해진 걸까. 천만에다. 미국이 미쳤다기보다는 우리가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당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우경화와 일방주의에는 나름의 논리와 철학이 있다. <승자학>에는 그 논리와 철학이 정리되어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출간된 이 책을 “미국 우파의 필독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올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도 “악의 무리와의 전쟁은 시민들의 희생을 감수하고 치러야 하는 도덕적 사명”이라는 이 책의 세계관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의한 세계 지배의 정당성을 역설한 이 책을 놓고 백악관에서 토론회를 열 정도로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의 메시지는 “자기 희생을 내건 기독교 윤리는 사회와 세계라는 큰 공동체의 질서 유지란 측면에서 보면 위선에 불과한 만큼 지도자는 자기 보존 본능을 추구하는 이교도의 윤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ㆍ로마의 통치사상과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성악설을 모태로 한 이교도의 윤리는 마키아벨리, 토마스 홉스, 로버트 맬서스, 헨리 키신저 등 성악설에 기초한 실용주의자들을 거치면서 더욱 정교한 형태로 발전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이 같은 논리에 입각해 저자는 유고 분쟁에서 미국이 10주에 걸쳐 무고한 주민들에게 폭격을 가하는 것보다는 독재자 밀로셰비치 한 명을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인간적인 만큼 적의 지도자의 암살을 금지하는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후세인 제거에 집착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또 “민주적 가치를 적용하기 어려운 지역들에는 민주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질서유지에 가치 있는 이념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공산주의를 용인해서 평화를 지키려 했던 카터 전 대통령보다 공산주의에 대한 강경책을 취한 레이건 전대통령과 대처 전 영국총리가, 테러를 묵인했던 클린턴 전대통령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더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TV토론 프로그램의 인기 사회자로, 또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저자는 25년간의 기자 생활 대부분을 해외 분쟁지역에서 보냈다.

“대학서 가르쳐 본 적도, 정부에서 일해 본 적도 없어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저자의 겸양지사와는 달리 언론인 특유의 현실감과 고전에 대한 통찰력이 책의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미국 중심인 탓에 닭살이 돋는 대목도 적지 않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10/0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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