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충남 서천 한산모시관과 마량포구

노을에 흠뻑 젖는 가을의 멋과 맛

가을을 몰고 오는 서늘한 바람은 모시옷을 입고 맞이해야 제 맛이다. 빈 구석 없이 꼼꼼하게 풀을 먹여 반듯하게 선을 세운 까슬까슬한 모시옷의 감촉. 세모시의 가는 숨구멍을 통해 그 서늘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으면 어느새 우리 마음도 여름의 기억을 지우고 넉넉하게 풀어지기 마련이다.

부산 동래에 전래되는 민요 가운데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 납니더/ 담배 씨만큼 보고 가소’라는 구절이 있다. 모시옷의 특징을 탁월하게 묘사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모시는 잠자리 날개와 비유되곤 한다. 그만큼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하고 가볍다는 이야기다. 한복의 멋과 풍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계절 옷으로 삼복더위가 시작되면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아름답기만 모시옷의 이면에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말 못할 고통과 한숨이 어려 있다. 낮에는 온종일 들일을 하고, 저녁이면 베틀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옷감을 짰다.

그러다 부옇게 날이 새면 또 들로 나가고. 그래서 모시옷을 만드는 일을 살이 내리고 피가 마르는 일이라 했다. 거칠게 쪼개 놓은 태모시를 앞니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째서 한 올 한 올 가늘게 짼다.

가늘게 째면 쨀수록 상품으로 대접받으니 엄한 시어미에게 꾸중 들어가며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모시를 일일이 침을 묻혀가며 무릎에 놓고 비벼 꼬아 이어야 비로소 베틀에 걸고 옷을 짤 수 있는 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모시 하면 한산이고 한산은 또 충청남도 서천군에 속했다. 한산면에 있는 한산모시관에 가면 어머니들의 피와 땀이 서린 모시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


전통적 어촌의 모습을 만난다

서천은 사백리가 넘는 부드러운 해안을 끼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또 질박한 개펄이 부지기수다.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는 풍요로운 갯벌에는 원시적인 어촌의 원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갯벌에 돌담을 쌓아 만든 독살로 고기를 잡기도 하고, 모기장으로 만든 그물을 어깨에 울러매고 자하를 잡는 어부들의 풍경은 이곳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다.

서천에서 보령으로 달리다 보면 서면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반도의 끝 마량 포구에 닿는다. 어느 곳이나 끝이라는 곳은 마음에 남기 마련이지만 마량 포구는 조금 유별나다. 이곳은 서해에서는 유일하게 한 자리에서 해돋이와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육지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오다 낚시바늘처럼 꼬부라졌다.

해돋이를 기다리다 보면 밤새 고기를 낚은 배들이 하나둘씩 포구로 돌아온다. 동트는 여명 위로 갈매기들이 무리 지어 날고, 기운 좋게 파닥이는 싱싱한 고기들이 금새 선창에 부려진다. 경매에 부쳐지고, 활어차에 실려 가는 활기찬 포구 풍경이 졸음이 묻어나는 아침을 화들짝 깨운다.

이윽고 고기를 퍼담는 일에 지친 어부가 허리를 펴고 담배 한 대로 피곤을 달랠 무렵, 어부의 튼실한 어깨 위로 미끈한 해가 떠오른다.

마량 포구에서 비인으로 나오는 바닷길은 해무(海霧)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피어나는 바다안개는 적당히 감출 것은 감추며 그리움처럼 번져나간다.

안개 너머로는 바위로 담을 쌓아 V자 모양으로 만든 독살과 장대를 세워 그물을 V자 모양으로 만든 어장이 어슴푸레 보인다. 물 빠진 갯벌 위로 비스듬하게 누운 배는 휴식처럼 편안하고, 고기를 걷으러 안개 속을 휘적휘적 걷는 어부의 발걸음도 한가하기만 하다.

독살은 남해도의 죽방렴과 더불어 원시어업이 어떠했는지를 온전히 보여준다. 독살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고, 해안이 밋밋한 서해와 남해에서 행해지던 어업이다. 바위를 주어다 V자 모양으로 1m 높이의 돌담을 쌓아두면 밀물을 따라 들어왔던 고기들이 썰물 때 V자 모양의 독살 안에 갇히게 되는 원리다. 물이 빠지면 어부는 독살 끝에 만들어 놓은 우물에서 고기를 길어내면 그만이다.

50여 년 전만 해도 지게로 한 가득 고기를 잡았다는 독살에서는 요즘 고기가 안 난다. 먼바다에서 일찍부터 잡아가기도 하고, 수온이 높아지면서 고기가 해안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찬바람이 불고 큰물이 한 번 지고 나면 숭어나 우럭 간재미 등이 심심찮게 잡힌다고 한다.

마량 포구 뒤편에 동백정이 있다. 수령 300년이 넘는 동백나무숲이 있는 동백정 곁에는 이 지방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조그만 당도 남아 있다. 동백정에 올라서면 오역도와 연도가 푸른 바다에 둥실 떠 있다. 해질 무렵이면 홍옥처럼 불타는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새벽이면 해무가 곱게 피어올라 섬들은 구름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곤 한다.


<길라잡이>

서천은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로 나오면 서천읍이 코앞이고, 602번 지방도를 따라 15분이면 한산모시관에 닿는다. 마량 포구와 동백정은 서천읍에서 보령으로 가는 77번 국도를 따라가다 비인에서 좌회전, 15분쯤 가면 된다.


<먹을거리>

비인반도에 자리한 마량 포구와 흥원항은 싱싱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도매로 활어를 파는 가게에서 저렴한 가격에 횟감을 살 수 있다. 흥원항은 9월 28일부터 10월 11일까지 전어축제를 연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가을 전어는 알아준다. 무침은 2만5,000원, 회와 구이는 2만원 한다.


<숙박>

마량포구와 춘장대해수욕장 주변에는 최근에 지어진 전망이 좋은 모텔이 많다. 비취모텔(041-952-0077), 아드리아모텔(951-6699).

입력시간 2002/10/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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