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우리풀 우리나무] 금강초롱

북쪽의 높은 산 꼭대기에서 막 하나 둘씩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이즈음, 역시 아주 높고 깊은 강원도나 혹은 경기도의 산엘 가면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우리 꽃이 있는데 바로 금강초롱이다.

바위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서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고운 보랏빛의 초롱을 닮을 꽃을 피우고 있는 금강초롱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 식물의 역사와 의미를 구태여 따져보지 않더라도 짧은 감탄과 함께 마음을 빼앗기에 된다.

그리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 귀한 꽃의 절정이 바로 이즈음이므로 설악산이나 점봉산, 화악산이나 명지산 같은 곳에 가서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다.

금강초롱은 깊은 산에 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이 식물 한 종만이 특산 식물인 것이 아니고 금강초롱이 속한 속(屬) 즉 집안 전체가 우리나라 특산인 우리 식물중에 우리식물이다. 게다가 분포역 자체가 좁으니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금강초롱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밤에 불을 밝히는 초롱을 닮은 꽃이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꽃을 한번 보면 그 고운 이름이 아주 딱 어울린다. 물론 최근 금강산엘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비경속에서 금강산에 핀 금강초롱을 만났을 것이다.

우리 이름은 이렇게 고운데 세계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나까이라고 하는 일본인 식물학자이다.

그가 자신을 촉탁교수로 임명하고 우리나라의 식물을 조사하도록 지원해준 한일합병의 주역이며 조선총독부의 초대 공사인 하나부사에게 보은의 뜻으로 이 소중한 우리의 특산 식물 속명을 하나부사야로 정한 것이니 참으로 치욕적인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는 그러한 학명은 쓸 수 없다고 하여 금강산이야(Kumgangsania)라고 하는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학명이야 국제적으로 함께 약속하여 쓰는 것이니 국제식물명명규약에 의해 싫다고 우리 마음대로 버릴 수 는 없는 형편이다.

금강초롱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크지 않은 포기를 만들며 그 사이로 꽃대를 올리고 하나씩 차례로 피워내는 꽃이 워낙 아름다워 곁에 두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보호되어야 하는 식물이니 씨앗을 통해 번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설사 싹을 틔우는데 성공을 하더라도 여름에도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고산성 식물이므로 여간해서 이 식물을 잘 키우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야생화재배농가에서도 이를 포기하고 있는 형편인데 최근 들리는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우리나라 금강초롱을 원예화 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좀 더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수 십년전엔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세계적인 이름을 빼앗겼고 지금은 이러한 식물을 자원화 할 수 있는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금강초롱을 두 번 잃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걱정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은 지금 피고 지고를 거듭할 이 땅의 금강초롱을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이름 불러주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입력시간 2002/10/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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