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영월 청령포

'단종애사' 슬픔 서린 역사의 땅, 애절함에 연민 느껴지기도

영월을 찾을 때면 생각나는 얼굴이 하나 있다.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앳된 소년 하나 빙그레 웃으며 다가온다. 강원도 영월 사람들은 그 소년을 단종대왕이라 부른다.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절해고도인 청령포에 유배되어 열 일곱의 나이에 죽임을 당한 소년이다. 그 소년으로 인해 영월은 산간오지의 허물을 벗고 역사 속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영월은 옛부터 ‘산다삼읍(山多三邑) 영평정’이라 불렸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이웃한 평창군과 정선군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고려시대의 무관 정공권이 영월의 산세를 ‘칼 같은 산들이 얼키고 설켜 있다’고 읊은 것처럼 외진 오지였다. 지금이야 교통이 사통팔달로 뚫렸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쉽게 가고 올 수 없는 고장이었다. 자연히 유배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로 가다 보면 서강의 멋진 풍경과 만나게 된다. 이 고장 사람들이 뼝대라 부르는 바위절벽 위로 휘어져 도는 길을 따라 서강이 흐른다. 서강의 곡류단절(曲流斷切) 지형은 영월로 내려서는 소나기재에서 완성된다. 고개 정상에 서게 되면 ‘선돌 100m’라는 표지판이 있다.

차를 타고 오느라 지친 머리도 식힐 겸 어슬렁어슬렁 가보면 갑자기 발치 아래가 보이지 않아 허공에 뜬 것처럼 느껴진다. 하늘에 사는 힘센 장수가 칼로 내리쳐 두 동강이 난 바위는 그대로 거대한 탑이다. 그 갈라진 바위 틈 사이로 서강의 짙푸른 물줄기와 햇살에 빛나는 모래사장이 좀체 눈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물줄기가 흘러내리다 왼쪽으로 감아 도는 곳에 단종의 고혼이 스민 청령포가 있다.

단종(1441-1447)은 열두살에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의 첫째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에 의해 쫓겨났다. 이에 성삼문을 위시한 이른바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동모자의 고발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된다. 단종을 유배지로 안내하던 의금부도사 왕방연은 서강을 바라보며 괴로운 심정을 시로 읊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맘 같이 울어 밤길 예놋다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은 그 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관풍헌으로 옮겨진 다음 해 다시 단종의 복귀를 꾀하던 금성대군의 계획이 들통나 열일곱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단종의 주검은 땅에 묻히지 못하고 동강에 던져졌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그 주검을 거두지 못하였는데 영월의 호장인 엄홍도가 어둠을 틈타 단종의 주검을 건져 동을지산에 묻었다.

청령포는 물줄기가 말발굽 모양으로 돌아나가 삼면이 물이고, 그나마 산자락이 달려온 한쪽면은 가파른 절벽인데다 바위로 솟아 있어 배를 타고 물을 건너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다. 말 그대로 천혜의 유배지인 셈이다.


장릉 둘러싼 기품있는 소나무

선착장에서 손으로 잡아 끄는 거룻배를 타고 청령포 안으로 들면 순간 적막감이 감돈다. 송림은 우거져 햇빛의 산란을 막고 서늘한 기운이 곳곳에 서려 있다. 시골장터처럼 번잡한 여느 유원지와는 달리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청령포에는 단종 사당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옆으로 누운 소나무가 이채를 띈다. 현존하는 소나무 가운데 가장 크다는 관음송의 고고함과 단종의 활동공간을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으로 제한한 금표비의 준엄함, 단종이 석양이 물드는 저녁나절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는 망향대(望鄕臺)의 애절함이 있어 청령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청령포에서 나와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을 찾을 일이다. 기품 있는 소나무가 수해를 이룬 동을지산의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은 단종의 묘는 그의 애절한 생애를 추모하며 찾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따뜻한 봄날 단종묘 앞에 앉아 있노라면 어디선가 새울음 소리가 들린다. 그 울음소리에서 짧은 생을 살다간 단종에 대한 연민이 묻어난다.


청령포 길라잡이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신림IC로 나온다. 신림에서 88번 군도 주천을 거치면 제천에서 영월 가는 38번 국도와 만난다. 영월읍에서 청령포까지는 차로 10분이 채 안 걸리고, 장릉은 영월읍 초입에 있다.


먹을거리와 숙박

장릉 입구에는 된장찌게와 쌈을 곁들이는 보리밥집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장릉보리밥집(033-374-3986)이 유명하다. 큼지막한 그릇에 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 먹는 맛이 남다르다. 숙박은 영월읍에서 하는 것이 좋다. 이화장(033-374-8853), 파크장(033-373-6110), 로열장(033-374-8101)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0/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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