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개그펀치] 북한 꽃처녀에 '홀딱'

월드컵의 후유증이 남았던 탓일까? 이번 부산 아시안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사실 말고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만한 행사였다.

월드컵 때 젖먹던 힘까지 쏟아 부으며 응원을 펼쳐서인지 처음엔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마치 이틀 연속으로 밤을 새워 일한다는 부담감처럼 심드렁했었는데 금방 뜨거워지는 타고난 민족성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방송국에서도 틈만 나면 TV 앞에 앉아 넋을 놓고 경기를 보곤 했다.

아시안 게임에는 여러 종목이 있지만 볼 때마다 특이하게 느껴지는 경기도 있었다. 바로 세팍타크로라는 경기인데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족구와 비슷한 경기였다. 15세기 경 동남아의 궁정경기로 시작했다는 이 세팍타크로를 보면서 인종과 문화, 국가간의 이질감을 뛰어넘는 인간본성의 공통점을 발견했다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빈 우유팩을 걷어차며 족구를 하는 모습과 아주 흡사한 경기를 이국의 젊은이들도 즐긴다는 사실은 세상이 돌고돌아 그 근원은 하나라는 가슴 벅찬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나라마다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각종 놀이나 운동시합이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우리나라, 남의 나라 따지며 아웅다웅 싸우고, 비극적인 대립과 전쟁으로 치닫는 현실이 새삼 아이러니 할 뿐이다.

적으로 구분되어지는 국가간의 대립이나 인종간의 거리감이 얼마나 가치없고 허무한 것인지 아시안 게임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뛰는 선수들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이번 아시안 게임이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북한의 참가와 파격적인 응원단이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는데 반대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반공 이데올로기를 단단히 학습받은 세대들은 ‘도대체 내가 학교에서 배운건 뭔가?’ 하는 어리둥절함으로 혼란을 느낄만큼 북한 선수들과 응원단을 대하는 남한 국민들의 태도는 여유있고 탄력적이다. 북한의 장신 농구선수인 이명훈의 신발 사이즈가 궁금하고 유도의 계순희가 동메달에 그쳤을 때는 집안의 누이를 보듯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최대의 화제인 북한의 미녀 응원단들. 아, 어찌 그녀들은 그리도 어여쁘고 씩씩한지 모르겠다. 북한의 미녀 응원단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우선 그녀들이 너무 예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게 갖기 마련인 선입견-예를 들면 굶주렸다거나 군인처럼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거나 하는-을 일순간에 허물어뜨렸다. 그녀들은 건강하고 발랄하고 귀여웠다.

응원방식이 다소 촌스럽고 획일적이긴 해도 세련된 화장술과 수줍은 듯 하면서도 또랑또랑한 말투, 순박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녀들에게 이미 많은 남한 사람들은 속된 말고 뻑이 갔다. 응원단의 동작과 구호가 화제에 오르고 인기가 없는 종목의 경기장에도 북한 응원단이 떴다 하면 관중이 만원사례였다. 다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응원단들에게 ‘너무 예뻐요’

‘우리 친구해요’ 하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녀들이 들뜨고 벅찬 목소리로 ‘우리 꼭 통일을 이루어 만납시다’ 하는 화답을 보내는걸 들으며 맞는 말이긴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좁혀지지 않는 이질감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하여튼 이 미녀 응원단들에게도 팬클럽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A군은 특히 열성적이었다. 한눈에 반한 북한 미녀를 보고자 응원단이 뜨는 경기일정에 맞추어 부산까지 내려가 경기를 관람하고는 했다. 그러더니 얼마후 아주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형, 내가 며칠이고 쫓아다닌 보람이 있었어. 오늘 드디어 그 북한여자 전화번호를 땄잖아. 근데 평양으로 전화하려면 어떻해야 되지?”

입력시간 2002/10/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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