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특구 양빈 10일 천하

중국 권력투쟁의 희생양인가?

양빈(楊斌) 북한 특별행정구 장관은 두리번거리며 기자에게 담배를 하나 쑥 내밀었다. 9월30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외곽 허란춘(荷蘭村ㆍ네덜란드 마을) 구내에 있는 양빈 장관의 집무실에서였다.

그가 내민 담배는 영국산 ‘555’였다. 기자회견 석상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기가 무엇해, 29일부터 줄곧 옆 자리에 붙어 앉아 취재 중인 기자에게 담배를 권한 것 같았다. 그는 ‘체인스모커’였다. 사흘간 잇따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매번 555 담배를 거의 입에 물고 있다시피 했다.

그의 인상은 기자가 몇 년 전 대만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왕융칭(王永慶) 회장과는 달랐다. 王 회장은 대만 최대 재벌그룹의 하나이자 세계 화교 10대 그룹에 속하는 ‘포모사 플라스틱’의 총수. 楊 장관과 王 회장에게서 받은 인상의 차이는 단순히 연배나 개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80세를 넘긴 王 회장은 젊은이 같은 활력과 눈매, 자신에 찬 말투로 기자를 압도했다. 당시 느낌은 ‘명불허전’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거대 화상(華商)으로 일어선 입지전적 인물이라더니,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일관성 없는 언행, 신중함도 결여

楊 장관에게서 王 회장의 무게를 느낄 수는 없었다. 楊 장관의 나이가 39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일관성과 신중성이 결여돼 있었다. 예는 많다.

그는 9월 말 기자회견에서 “신의주 특구 입법의원 중 적어도 한 명, 많으면 두 명까지 한국인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의주 특구 기본법에는 입법의원을 특구 주민의 투표로 선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자가 30일 회견에서 기본법 조항을 거론하며 특구 장관에게 입법의원을 임명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자, 그는 말을 바꿨다. “한국인이 선출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9월30일부터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신의주 무비자 입경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사전 협의가 없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등 중국 변경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국간 협정에 의해 중국 당국의 ‘출경 허가증’을 얻어야 한다.

그의 말만 믿고 선양으로 날아간 한국 기자들이 30일 약속 불이행을 따지자 그는 갑자기 호언장담을 했다. “여권만 제출하면 한 시간 내에 비자를 만들어 주겠다. 내가 보증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은 1시간이 아닌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공언으로 판가름 났다. 중국측이 출경 허가증 발급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그는 북-중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楊 장관은 10월 1일 “4일부터 3일간 신의주에 가서 북한 당국자와 만나 특구개발 문제와 비자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신의주행은 불발로 끝났다. 오히려 사흘 뒤인 4일 새벽 선양 허란춘 자택에서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연행됐다.

9월24일 북한에 의해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으로 임명돼 뉴스의 초점이 됐던 그는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또 다른 주목의 대상이 됐다.


양장관 둘러싼 3가지 의문점

楊 장관을 둘러싼 궁금증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진다. 첫 의문은 그가 과연 신의주를 홍콩식 경제특구로 만들 능력을 갖고 있는가 이다. 둘째 의문은 중국이 북한의 부총리급 인물이 된 그를 단순히 경제범죄 혐의 때문에 연행 조사하는가 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북한간 외교적 복선이 숨어 있다는 추측이 깔려 있다. 셋째 의문은 그를 조사하는 배경에 중국 내 권력투쟁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첫 물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시각은 오늘날 홍콩을 만든 것이 정교하고 자유방임적인 제도적 메커니즘과 역사적 우연의 결합이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홍콩은 150여년에 걸친 영국의 식민통치기간 형성된 서구적 제도, 1949년 공산당 집권을 피해온 중국의 상인과 자본, 거대한 중국을 배후에 두고 태평양을 향한 지경학적 위치 덕분에 발전했다.

반면 신의주에는 홍콩이 갖고 있는 장점이 거의 없다. 비록 楊 장관이 무관세와 소득세율 14%를 제시했지만, 이 정도의 특혜는 중국 연안의 각종 개발구가 갖고 있는 혜택에 비해 결코 나을 게 없다. 잠재적 내수시장과 저가의 노동력, 입지조건을 고려할 때 신의주가 확 끌리는 투자처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더욱 문제는 楊 장관과 북한의 특구 경영 능력이다. 권력자나 지방 정부의 유착이 치부와 직결되는 중국의 사업환경에서 성공한 楊 장관은 서구식 시장경제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허란춘에 있는 그의 중국 그룹본부 운영 상태만해도 수준 미달이란 인상을 풍긴다. 건물은 초호화판이었지만 참모진과 내부의 통신시설은 현대적 기업의 소프트 웨어 수준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특구 건설과 楊 장관을 지원해야 할 북한도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다. 중국은 1979년 남부 광둥(廣東)성에 최초의 경제특구 선전을 개방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 사상 해방을 시작했다. 마오쩌둥(毛澤東)식 계급투쟁 노선을 폐기하지 않는 한 시장경제 실험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 주석의 유훈통치 스타일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한 모퉁이를 철조망으로 둘러싼 뒤 외국인에게 통치를 맡기고, 특혜로 외자를 유인한다고 해서 홍콩식 특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의문은 북한과 중국간의 외교적인 계산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楊이 특구장관에 임명된 사실을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그의 경제범죄 혐의에 대한 조사가 특구장관 임명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신의주 특구 건설 계획을 중국이 몰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안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북한은 중국 첩보기관의 주요 활동지역이자 접촉 대상의 하나다. 만약 중국이 사전에 신의주 특구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을 진 국가안전부의 해당 부서장 인책 뉴스가 이미 흘러 나왔을 것이다.


뒤통수 맞은 중국, 북한에 역공?

중국의 외교적 계산은 대미외교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북한에 경고를 줌과 동시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楊 장관을 잡아 조사하고, 신의주로 가는 출경 허가증 발급을 유보함으로써 ‘중국의 동의없는 북한의 단독행위는 성사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90년대 이후 북한이 외교적으로 ‘미국 중시, 중국 경시’ 경향을 보임에 따라 상당한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매년 상당액의 경제원조를 받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 대접을 중국에 하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楊 장관을 통한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 느낌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말이나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중국 소식통들의 전언이 이를 방증한다.

楊 장관에 대한 조사가 중국 내 권력투쟁과 결부돼 있다는 추론은 현재까지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11월8일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16대)를 앞두고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뉴스들은 ‘뭔가 틀림없이 있다’는 추론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楊 장관의 허란춘 소재지인 랴오닝성 간부들의 정치적 무게가 관심이다. 랴오닝성 원쓰쩐(聞世震) 당 서기와 보시라이(薄熙來) 성장은 차세대 유력자들로 중앙에서도 상당한 힘을 갖고 있다.

더욱이 전임 랴오닝성 성장이었던 리창춘(李長春) 광둥성 당 서기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 및 원자바오(溫家寶), 우방궈(吳邦國) 부총리와 함께 차세대 4대 강자를 의미하는 ‘4대금강(四大金剛)’으로 불린다.

권력과의 유착에 비중을 둔 楊 장관의 경제범죄 조사는 결국 이들 랴오닝성 전현직 실력자들에 정치적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 楊 장관에 대한 조사가 세대교체를 둘러싼 중국 권력 핵심부의 헤게모니 싸움이나 후계구도 짜기와 무관할 수는 없다는 추론은 이래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楊 장관은 중국의 대북한 외교 노림수나 내부 파워게임 과정에서 유탄을 맞은 희생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楊 장관이 홍콩식 특구 건설자가 되기에는 능력부족이라는 사실이다.


박태준 전 총리에도 특구장관 제의설

楊 장관에 대한 중국측의 처리방향과 향후 북한이 楊 장관을 계속 신임할 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홍콩 언론들은 북한이 楊 장관을 대신해 제3의 외국인을 특구 장관으로 재임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포철신화를 일군 박태준 전 총리도 한때 신의주 특구 장관 자리를 제의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누가 그 자리를 맡더라도 피곤한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배연해 기자

입력시간 2002/10/18 16:45


배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