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봉 92호 열리던 날…안상영 부산시장 등 초정

만경봉호 풀취재단은 10월 7일 부산시청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다대포로 갔다. 700리를 흘러온 낙동강은 자신과 바다 사이를 가로막는 하구둑을 뚫고 안간힘을 다해서 바다와 한 몸이 되고 있었다.

강물을 받아들인 바다는 유달리 힘차 보였고, 저멀리 서산 너머로 장엄하게 붉은 놀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설레는 풍경들이었다.

풍경들을 지나자 멀리 다대포국제여객터미널 부두에 접안해 있는 만경봉-92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8일 동안 보아온 터라 익숙해 졌는데도 배 위의 인공기는 새삼스러웠다.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왜 저곳에 가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다른 성(性)의 목욕탕이 때로 궁금하듯이 예쁜 북측 처녀들의 선상생활이 궁금한 것일까, 배라는 특수 공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일까. 그런 게 아니라면?


통일 향한 항해의 첫발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을 테지만,주된 이유는 만경봉-92호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처음으로 남측 영토에 들어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정박해 있으면서도 실상은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할 정도로 너무나 먼 곳에 떠 있는 북측의 영토. 그 어정쩡한 거리감을 사람들은 단숨에 해체하고 싶어하는 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오후 6시 50분. 안상영 부산시장을 비롯한 남측 초청인사 7명이 속속 터미널에 도착했다. 안시장은 CIQ(세관,출입국관리소,검역소)를 통과하기 전 기자들 앞에서 “북측의 응원단 등 700여명과 400만 부산시민들이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그 와중에 막연한 벽이 허물어지고 동질성이 확보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의 2층에 해당하는 현문(출입구) 앞에는 정명철 선장이 제복을 입고 나와 있었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편안하게 일행을 맞았다. 안 시장과 이 영 시의회 의장은 선장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응접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6인승으로 좁았다. 나머지 일행과 기자들은 계단을 통해 6층으로 갔다.

6층에서는 리명원 북측 응원단 단장이 영접을 했다. 그는 “반갑다”고 말했고 안 시장은 “초청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응접실에서 해양관련 인재 양성 방안 등에 대해 2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선물을 교환했다.

먼저 북측이 40호 가량 크기로 금강산 옥류동, 소나무와 학, 닭을 수놓은 수예품을 시장, 시의회 의장, 교육감에게 각각 전달했다. 북측의 수예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다.


북한산 ‘봄향기’ 화장품으로 단장

남측에서는 시장이 주석으로 만든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모형 미니어처와 넥타이스카프 등을 선물했다.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억지 연출은 없었다. 기자들은 취주악단 지휘자를 포함한 응원단 여성대표 4명과 인터뷰를 했다.

김영희 김순정 홍은순 정명순 등이었다. 2명은 한복을, 다른 2명은 단복을 차려 입었다. 취주악단 지휘자 정명순의 목은 쉬어 있었으나 그는 “청년이니까, 힘든 줄 모른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침에는 신의주에서 생산되는 ‘봄향기’란 화장품으로 얼굴을 다듬고, 밤에는 북측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거나 학습을 한다고 전했다. 다대포 일원의 아파트 불빛을 보면 고향의 가족이 생각나기도 하고, 또 열렬히 환영해 주는 남측 주민들의 손을 잡고 실컷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기자들 북한술로 폭탄주 제조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시장 일행은 6층 응접실에서, 기자들은 4층 연회장에서 각각 만찬을 했다. 식탁에는 ‘냉요리’로 깎두기 삼색나물(시금치 콩나물 도라지) 모듬 햄 감자튀김 낙지튀김 등이 놓여 있었고, 계속해서 ‘온요리’로 닭다리속구이, 소고기 볶음, 새우요리, 송이버섯찜, 그리고 쌉밥과 송이버섯국이 나왔다.

술로는 산삼과 도토리를 섞은 장뇌삼술, 평양소주, 룡성맥주 등이 제공됐다. 40도 짜리 장뇌삼술은 고급술이라고 했다. 남북 기자들은 장뇌삼술이나 평양소주에 맥주를 섞어서 폭탄주를 만들었다.

북측은 ‘민족화합주’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도는 동안 6층에서도 노래를 하고 술잔을 서로 권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한 북측 관계자는 “만경봉호에 남측 사람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며, 당국자들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서로 만나 동포의 정을 나눈다는 사실이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1990년초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가 열렸을 때 북측 기자들이 한국일보 신윤석 기자(현 도쿄특파원)의 집을 방문해 저녁을 먹었던 사실을 상기하고 “기자는 민간인이니까, 가능하다면 우리집에 가서 사는 것도 보고 술도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북측 사람은 “그런 게 얼마나 좋습네까”라고 화답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음식을 나르던 의례원(종업원) 김영숙씨를 불러 사인을 부탁하자 “통일의 광장에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 부산시민들에게 우리의 동포애를 꼭 전해주세요!”라고 적었다.

만찬이 끝나고 일행들이 다시 현문 앞에 모였을 때 응원단원 김순정씨에게도 사인을 요청했다. 그는 좀 악필로 “조국통일을 위하여”라고 쓰고 느낌표를 세 개 찍었다. 처음에 한 개만 찍었는데, 다시 수첩을 빼앗더니 두 개를 더 찍었다.

안 시장은 “북측 여성응원단원들도 술을 한 잔씩 했고, 결혼하면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오라고 했더니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 들어갈 때는 거의 없었던 인파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경 나온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가벼운 환호를 보냈다. 그 박수소리는 전향적인 자세로 남측을 초청한 북측을 향한 것인 듯 느껴졌다.


일제 과자, 미제 담배…코카콜라 자판기도

만경봉-92호는 1992년 6월부터 북한의 원산-일본 니가타 항로를 매월 1, 2회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화객선이다. 길이 126m, 높이 20m, 너비 21m, 무게 1만톤, 평균속도 20노트(시속 약 27㎞), 최고속도 23노트, 객실 수용능력 200여명, 화물적재량 1,000톤의 재원을 갖추고 있다. 장창영 선장을 비롯한 68명의 선원이 운항을 책임지고 있다.

장 선장은 “이 배는 수령님께서 92년 총련에 선물한 것으로 한 10년 운영됐다”고 말했다.

호텔의 로비격인 2층 현문(출입구)홀 정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식으로 살아나가자.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가 붙어 있다.

6층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머물렀다는 특급객실(601호)을 포함한 6개의 특급객실이 배치돼 있다. 일반객실은 31개이다. 응원단은 일반객실에 머물고 있다. 특급은 2인용, 일반은 4~6인용이다. 선장실은 701호다.

각 층마다에 세탁기가 비치돼 있으며 총련 승객들은 서비스를 받지만 응원단은 직접 빨래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목욕시설은 특급과 1등실에는 딸려 있으나 일반실에는 없다. 대신 공동욕실이 운영되고 있다.

4층에 마련된 ‘매대(매점)’에는 기념품과 간식거리 등이 진열돼 있다. 기념품으로는 경옥고, 십전대보환, 생맥꿀, 오미자 등 한약류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일제 쿠키와 초코칩 등 과자류도 진열돼 있다. 럭키스트라이크 등 외제 담배들도 눈에 띈다.

같은 층의 커피점에서는 일제 산토리 양주, 아사히 맥주, 쥬스 등을 팔고 있다. 가격은 300~2,500엔 수준이다. 모두 엔화로 표시돼 있어서 총련 사람들 주요 고객이란 사실을 짐작케 한다. 다방 한 켠에는 영상노래반주기로 불리는 노래방 기기가 설치돼 있다.

식당겸 연회석은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의례원 25명이 봉사를 하고 있다. 남녀 모두 깔끔하다. 평소에는 비빔밥 볶음밥 된장국 등을 판다고 한다. 물은 ‘수정 금강산 샘물’을 공급하고 있다. 4, 5층으로 통하는 계단 중간에는 코카콜라 자판기가 선명한 로고를 붙이고 서 있다.

이광우 부산일보 사회부 차장

입력시간 2002/10/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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