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노벨평화상 감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02년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선정했다. 위원회는 수상 사유로서 “대통령 재임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국제분쟁을 중재하고 인권을 신장시켰으며 경제·사회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공로”를 들었다.

또한 “재임 중 이스라엘과 이집트간 캠프데이비드협정 체결을 중재했던 사실만으로도 평화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또 카터가 “무력사용의 위협이 대두되는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분쟁은 최대한 국제법, 인권 존중, 경제개발에 기반을 둔 중재와 국제 공조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최근 이라크 공격에 나선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리로서도 감회가 크다. 북한 핵개발 의혹문제로 북미간 긴장이 고조되었던 1994년 여름, 자신이 직접 평양에 들어가 북한의 핵개발 동결과 경수로 제공 등 대타협을 이루어냈던 사람이 바로 카터였기 때문이다.

사실 핵개발시설로 의심을 받았던 북한 영변지역에 대한 공중폭격까지 검토되었던 당시의 상황은 탈냉전 이후 한반도의 최대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카터의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고 그 대타협의 결과 이루어졌던 북미 제네바합의는 지금까지도 한반도 평화를 지탱해주는 핵심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 우리로 하여금 만감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사안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최근의 정쟁적 논란이 그것이다. 바로 2년 전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환호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후인 최근, 한나라당은 연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심지어는 김대중 정부의 노벨상 수상 로비설 의혹을 제기, 노벨상 자진 반납 또는 그 반납운동까지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부 정책의 감시자로서의 야당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은 시장바닥의 헐뜯기와 달라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국가 정책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경쟁인 만큼 정당한 근거와 합리적인 대안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한나라당의 비판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벨상 수상 로비설과 관련하여 비판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최규선이 작성했다는 문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건이 작성되었다 할지라도 그 문건이 김대중 정부와의 협의 하에 진행된 것인지, 시행 가능한 것인지, 또는 실제 시행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노벨상위원회가 그러한 로비에 좌우되는 그러한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로비가 가능하지 않은 객관적 상황인데도,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에 대해 노벨상 로비 문제를 제기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김 대통령을 헐뜯어야 한다는 정쟁적 당파심일 것이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보다 재임 후가 더 아름다운 대통령으로 언급된다.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ㆍ76) 도쿄대 명예교수는 자신은 “대학을 꼴찌로 졸업했다”며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이 노벨상을 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말했다.

박사도 아닌 연구소 주임으로서 또 다른 일본인 수상자가 된 노벨화학상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ㆍ43)는 “스웨덴에 노벨상이 또 있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밖으로부터는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인간적이고 소박한 면면들이 들려오고 있지만, 우리의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서는 험담만 늘어놓는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문화의 현주소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2002/10/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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