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햔국경제 향후 3개월이 고비다] 세계경제 위기감 고조

뉴욕 증시가 지난 여름 이후 폭락세로 돌변하면서 세계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뉴욕 증시의 주가 낙폭은 1929년 대공황 다음으로 큰 폭이고, 세계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인 미국 경제는 2년째 기우뚱 거리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가 10년 이상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마저 장기침체에 빠진다면 세계 경제의 하강은 불가피하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여론과 지지층 확보에 여념이 없고, 전쟁 발발에 대한 우려는 유가 폭등을 유발, 세계경제와 증권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1997년의 아시아 위기, 98년의 러시아 국가 파산이 국지적 금융위기로 지나갔지만, 지금의 위기는 세계 1,2위 경제 대국에서 발원한 것인만큼 세계경제에 주는 파장과 진폭이 클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

베를린 장벽 붕괴이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단일 시장을 형성했다. 80년대엔 미국 경제가 나쁘면 일본과 유럽 경제가 호황을 유지했고, 90년대엔 유럽과 일본이 침체해도 미국 경제가 좋았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 유럽의 세 축이 서로 다른 경제 사이클을 형성하면서 세계 경제는 서로를 보완하며 전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세계 경제는 미국을 단일 엔진으로 움직이고, 유럽과 일본은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함께 하는 구조로 변했다.

그러면 21세기가 시작된후 지난 2년반 동안 미국 경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미국 경제는 지난 세기말 10년 동안 누렸던 장기호황의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놓여 있다.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인 다우존스와 S&P 500 지수는 지난 3ㆍ4분기에 18% 하락, 15년만의 큰 폭으로 하락했고, 신경제 거품의 모델로 지목되는 나스닥 지수는 지난 분기에 20% 가라앉았다. 블루칩 30종목의 다우존스 지수는 10월 11일 현재 2000년 3월의 최고점 대비 40%, S&P 500 지수는 50%, 나스닥 지수는 무려 80%나 폭락했다.

지난 2년반 동안의 주가 하락으로 뉴욕 증시의 시가총액은 그 사이에 16조 달러에서 8조 달러로 급감했다. 지난 90년대 장기호황을 구가하면서 형성된 자산 거품이 2년여에 걸쳐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지난 3년간 침체와 저성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장기호황은 미국 경제에 증시 투자 소비 달러 부동산 등 다섯 개의 거품을 형성했다. 거품의 카테고리는 서로 겹치지만, 증시 거품이 다른 거품을 부풀린 원동력이다.

이중 가장 먼저 투자 거품이 꺼졌다. 1센트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인터넷 기업에 수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던 투자거품은 21세기 첫해인 2000년초에 폭발했다.

미국 달러화의 거품은 뉴욕 증시 팽창에 힘입어 해외자본이 유입되면서 형성됐다. 달러는 뉴욕 증시 하락과 함께 올들어 10% 가량 하락했다가 최근 진정되고 있지만,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위험수위인 5%대에 이르기 때문에 더 떨어질 소지를 안고 있다.

아직 버티고 있는 거품은 소비와 부동산 시장이다. 지난해 9월 테러에도 불구, 미국의 경기침체가 완만했던 것은 소비가 강하게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이상 경제가 꺾어지면서 소비자 신뢰지수는 올 여름 이후 하락하고,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미국인들의 소비가 이제 피로감에 사로잡혀 있다.

부동산 거품은 경기침체 시기에도 금리 인하 덕분에 커졌다. 그러나 지난 여름 이후 신규주택 착공건수와 기존주택 거래건수가 하락, 그 거품이 절정에 와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미국 기업들이 최근 3년째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그 거품이 급속히 꺼지고 있다. 설비 과잉이 가격 디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수익 저하, 주가 하락의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10년 호황의 잔재인 자산 거품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뉴욕 증시도 일본 니케이지수처럼 상당히 오랫동안 가라앉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주가가 더 가라앉을 경우 소비 거품도 가라앉고,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 회복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소비와 부동산의 거품이 빠질 경우 저성장이 장기화하며, 더블딥(이중침체)에 이어 트리플딥(삼중침체)의 가능성도 있다”고 우울한 전망을 내리고 있다.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우려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연초에 강력한 회복세를 보였던 일본마저 빠른 속도로 기울고 있다.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는 9,000 포인트 이하로 내려가 10년전 최고점의 4분의1 수준으로 떨沮낡? 일본 정부가 은행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발행한 국채가 시장에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경제에 대한 시장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뉴욕 증시와 도쿄 증시의 폭락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전세계 증시에 폭락 도미노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ㆍ일 증시 폭락의 이중파고는 한국을 비롯, 유럽, 이머징 마켓의 잠재적 내부 문제를 뒤흔들면서 세계자본시장 전체를 강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의 증시 동시 폭락은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유발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 붕괴로 이미 몇 년째 디플레이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미국도 뉴욕 증시 폭락이 가속화할 경우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기업 수익을 감소시키고, 소비 위축을 초래하므로 경기 하강의 원인이 되고, 세계 경제를 또다른 침체(더블딥)로 빠트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증시 동시폭락은 자본의 국제이동을 저해하고, 선진국의 해외직접투자(FDI)를 위축시키고 있다. 자국 증시가 하락하면서 미국 뮤추얼펀드들은 해외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일본도 미국에 투자한 자금을 본국으로 송금시키는 바람에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자금이 급감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언제 회복하나

1929년 미국의 대공황과 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는 증시 붕괴에서 출발했다. 주가 폭락이 자산 거품을 붕괴시키고, 은행 부실과 투자 부진, 소비 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러나 뉴욕 증시 약세장이 펼쳐졌던 73, 74년에는 주가 하락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뉴욕 증시가 이 시점에서 저점을 형성할 것인지, 추가 하락할 것인지가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미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미국 경제가 지난 2년간에 걸친 저성장의 궤도를 끊고, 6개월 내에 정상 속도로 성장한다면 뉴욕 증시가 상승의 모멘텀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 증시의 거품 붕괴는 미국 경제 곳곳에 상처를 내고 있다. 미국 2위 상업은행인 JP 모건의 부실채권 규모는 통신주 폭락으로 14억 달러로 불어났다.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주가하락으로 담보력이 약해지면서 은행의 마진콜을 메우려고 소비를 줄이고 있다. 주가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의 금융부실은 일본처럼 위험수위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가 하락은 기업?신용을 저하시켜 자본조달을 어렵게 하고,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다. 미국 2위 자동차회사인 포드의 회사채 10년 만기물의 가산금리가 미국 국채(TB)에 대해 6%로 치솟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경제는 이라크 공격과 유가 상승의 불확실성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당장 붕괴될 정도로 허약함을 노출하지는 않고 있다. 소비자 신뢰가 하락하고 있지만, 지난 여름까지 소비 통계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들이 실업자를 쏟아내고 있지만 고용통계가 향상되고 있는 것은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폭락 장세가 계속될수록 주가가 저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뉴욕 주가가 고평가돼 있었지만, 지난 2년반 동안 거품이 빠질만큼 빠져, 현재의 뉴욕 주가가 기업 수익에 견주어 적정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증권담당 평론가 플로이드 노리스는 74년의 정치ㆍ경제 상황이 현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지금 증시의 베어마켓(약세장)이 끝나가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 스캔들과 오늘날 기업 회계 부정이 비슷하고, 베트남전과 이라크 공격, 더블딥의 불황, 유가 상승 등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또 당시엔 주력 상승주 50개의 거품(니프티 피프티)이 꺼지면서 장기 베어마켓이 형성됐고, 지금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의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뉴욕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몰려가면서 주가 수익률과 채권 수익률을 비교할 때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채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달들어 TB 10년 만기물의 수익률이 다우존스와 S&P 500 지수의 수익률보다 1~3%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조그만 상황 변화에도 유동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하게 될 여건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의 증권분석가 바이런 비언은 “현재의 주가가 적정선에 이르렀다”면서 “주식을 파는 압력보다 사는 압력이 거세질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약세장 지속을 주장하는 비관론도 여전히 거세다. 이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고, 미국 경제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무기력해졌다는 점을 들면서 저점 형성론이 성급한 견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인영 서울경제신문 뉴욕특파원

입력시간 2002/10/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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