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오늘의 1위, 내일은 꼴지

대통령이란 되기도 어렵지만 떠나서도 끔찍한 직업이 될 수 있는 자리임이 분명 해지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키고 있는 리차드 베더, 로웰 갤러웨이 교수는 2001년 6월에 나온 ‘새로운 대통령제 접근-대통령국가의 성장과 개인 자유의 몰락’에서 미국 역대 대통령의 위대성을 조사ㆍ평가한 자료를 발표했다.

베더와 갤러웨이 두 교수는 정치 역사 통계 등에 전통한 전문학자들이 설문이나 토론을 통해 대통령들의 위대성을 파악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 ‘대통령 업적에 따른 능력 매기기’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재임 기간 중 대통령들이 국민총생산(GNP)과 국내총생산(GDP)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재임 당시 행정부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고, 국가의 빚은 얼마였고, 물가는 어느 정도 올랐는지 등을 조사했다. 이 같은 조사는 따로 설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1996년까지 통계는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유사한 조사는 변호사며 통계전문가인 윌리엄 라이딩스(‘위대한 대통령 끔직한 대통령’ 저자) 등이 700여명의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관련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뒤 조사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여 순위를 매겼다. 대부분 지도력, 업적 및 위기 관리 능력, 정치력, 인사정책, 성격,도덕성의 점수를 총합한 것이었다.

베더와 갤러웨이의 평가조사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제를 실시해 온 미국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총체적(역사 정치 사회문화적 포함)평가에서 위대한 대통령(Greatness)과 최악의 대통령(Worst)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느 조사에서도 링컨, 프랭클린 루즈벨트, 윌슨은 위대한 대통령 그룹(위대성의 상위 8위)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베더와 갤러웨이의 조사에서는 최악의 대통령 그룹(최하위에서 위 8위)에 이 세 명의 대통령 모두가 속했다. 라이딩스의 조사에서 2위였던 루즈벨트가 베더와 갤러웨이 조사에선 최하위인 39위로, 정상이었던 링컨은 38위, 6위였던 윌슨은 36위였다.

반면 라이딩스 조사에서 8위로 ‘위대성’에 턱걸이 한 트루먼이 1위, 2년밖에 대통령을 못했던 최하위의 하딩이 3위, 남북전쟁 후 하원에서 탄핵 받아 36위에 머물렀던 앤드류 존슨이 2위로 선정되는 등 위대한 대통령 그룹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등 국부급 대통령이 각각 3위에서 5위, 4위에서 8위로 소폭 하락하며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다.

이런 ‘혁명성’에 대해 베더는 담담히 설명하고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재임기간 중 GNP의 20~45%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예산에 투입했다. 이 같은 과도한 예산투입은 남북전쟁을 치른 링컨(15%대)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윌슨(23%대) 거쳐 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조에 달했다.

베더에 의하면 트루먼은 1945년부터 정부기구의 축소, 소득세 감면 등을 통해 GNP의 45%에 달했던 예산 규모를 15%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앤드류 존슨은 링컨의 팽창예산을 GNP의 10%이하로 내렸고 ‘백악관 부패’의 상징이었던 하딩도 윌슨 시절 늘어난 예산을 GNP의 10%대 이하로 끌어 내렸다.

베더나 갤러웨이식 조사방법을 모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위대성은 늘 역사가 평가해 줄 것으로 믿어와서다.

그러나 베더와 갤러웨이의 생각은 다르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예산을 확대하고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중앙집권화, 제왕화하는 것은 베더나 갤러웨이 본인들처럼 고전적 자유주의를 견지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대선기간 중에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자와 대통령직을 떠나야 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이 되고싶어 한 이상 그것은 역사적 활동이며 따라서 비난의 대상에서도 결코 제외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오늘의 평가에서 1위였다고 해도 내일의 평가에서 꼴찌나 최악이 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0/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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