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성옷을 입고 싶은 남자들

크로스젠더 카페, 독특한 성적취향을 즐긴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얘기다. 그러나 신촌의 한 카페에서는 이같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크로스드레서(CD) 카페 ‘러쉬’가 문제의 장소다.

이곳에 가면 ‘여자보다도 더 여자같은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진한 화장을 한 채 잡담을 나누는 수다족에서부터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채 인터넷 즐기는 사람, 몸에 착 달라붙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섹시걸(?)까지 다양하다.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는 TG, 이성의 옷을 즐기는 CD

언뜻 보면 이들은 영락없는 여자다. 미모나 몸매가 웬만한 여자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때문에 트랜스젠더(TG)가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평소에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남자들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여자 옷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 트랜스젠더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CD와 TG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요컨대 TG는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한다. 주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 옷을 입기는 하지만 여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에 반해 CD는 이성의 옷을 즐길 뿐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인문화 평론가 이명구씨는 “크로스드레서는 이성의 소지품을 통해 성적 만족을 느끼는 일종의 성도착증 환자”라며 “성도착 증세를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체의 특정부위에 집착하는 데 반해 CD는 이성의 소지품을 탐닉하는 게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이들의 왜곡된 성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성적 취향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분이 망가져 비정상적인 성적 선호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다.

그렇다면 CD는 왜 여성 옷을 입기를 선호하는 것일까. 해답을 듣기 위해 CD들이 자주 모인다는 신촌의 한 카페로 찾아가 보았다. 신촌역 8번 출구에서 동났?방향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이곳의 첫인상은 다소 침침한 분위기. 인적이 뜸할 뿐 아니라 가게도 ‘이벤트 주점’이란 간판만 켜져 있을 뿐 입구는 불이 꺼진 상태였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카페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조명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20여평 남짓한 내부는 락카페를 연상케 했다. 카페 중심에는 조그만 무대가 마련돼 있고 주변으로 칵테일 바에서 본 바가 둘러져 있었다.

늘씬한 종업원을 따라 자리에 앉자 방명록을 들이민다. 방명록에는 자신의 성향을 밝힐 것을 권하고 있었다. CD들이 모이는 술집인지 모르고 들어왔다가 혼비백산하고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어쩔 수 없이 방명록을 작성하게 한다는 게 업소측의 해명이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여종업원도 모두 트랜스젠더들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TG에 따르면 주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바에서 넘어온다고 한다. 자신을 J대 1학년 휴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이태원의 경우 일반 손님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지만 이곳은 CD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여자옷으로 갈아입을지 여부를 묻는다. 러쉬의 한 운영자에 따르면 이곳에는 현재 여성복 300여벌과 큰 사이즈의 하이힐 등이 마련돼 있다. 액세서리에서부터 가발까지 여장에 필요한 용품도 대여가 가능하다.


회원이 다 모이면 빌딩도 올릴 수 있어

실제 바 뒤편에 마련된 드레스룸에는 드레스, 블라우스, 원피스 등 각종 여성복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화끈한 변신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미니스커트나 교복도 눈에 띤다. 즉석에서 메이크업을 해주기도 하는데 비용은 한번에 5,000원 정도.

그러나 팬티나 브래지어 등 속옷류는 대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접 가져오거나 현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평소 집에서도 여성복을 자주 입는다는 한 CD는 “아쉬운대로 교복을 입고 있지만 웨딩드레스를 좋아하는데 러쉬에는 웨딩드레스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분장이 끝나면 카페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신다거나 맘에 맞는 사람하고 즉석에서 얘기를 나눈다. 업소측에 따르면 이곳에 오는 손님들의 직업이나 나이는 각각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막노동 일꾼까지 천차만별이다. 정기모음 때 “러쉬 회원이 다 모이면 빌딩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술이 얼큰하게 올라올 경우 여장을 한 채로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뭉쳤는데 무얼 못하겠냐는 것이다. 인천 부평에 거주한다는 한 CD는 “평소 청바지 차림에 하이힐 신고 밤거리를 거닐기도 하지만 불안했는데 이곳에 오니까 마음 편하게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정이 되자 갑자기 음악소리와 함께 요란한 조명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에 맞춰 이곳저곳에서 나온 CD들이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물론 여장을 했다고 해서 다 예쁘고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카페를 찾는 손님 중에는 우락부락한 남성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성복과 가발, 메이크업으로 변장(?)을 하기는 했지만 왠지 어색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성복을 즐겨 입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변 사람 눈치 보지 않고도 마음껏 자신의 성적 취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 아내와 애까지 있다는 한 CD는 “미인대회 선발대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자 복장을 하는 것이 좋을 뿐이지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의 눈빛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잘못된 성개념이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윤락 등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김진세 원장은 “크로스드레서는 치료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대부분이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2002/10/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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