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30] 사이판의 또다른 비경 티니안

카지노, 2차 대전 흔적, 자연의 경이 등 볼거리 많은 작은 섬

티니안은 정말 작은 섬이다.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내려다보면 정말 손바닥만하게 보일 정도로 작다. 작은 섬 안에 작은 마을과 작은 공항, 작은 선착장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하지만 막상 티니안에 내려 차를 달려보면 하늘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꽤 넓다. 섬의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원시림 그대로 남아있고, 사람들은 고기를 잡거나 목축을 하며 평화로이 하루를 난다.


한국인의 한과 슬픔이 밴 땅

떠들썩한 도시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질 때, 티니안(Tinian)으로 떠나자. 이 작은 섬에서 며칠 보내고 나면 시끌시끌한 일상이 다시 그리워질 것이다. 티니안이 심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에 평화가 생겨 무엇이든 견뎌낼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이판의 남쪽에 자리잡은 티니안은 사이판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직선 거리로는 5㎞로 무척 가깝지만 그 사이는 파도가 높고 선착장을 만들 수 없어 마을이 있는 티니안 섬 남서쪽까지 가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티니안에는 다이빙 포인트가 많아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다. 사이판으로 다이빙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스피드 보트를 빌려 타고 섬 북쪽에 퍼져 있는 포인트를 차례로 탐사하곤 한다.

스페인을 시작으로 독일, 일본의 통치를 거치면서 원주민의 문화와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다. 남아있는 것은 타가 하우스가 전부다.

티니안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역사는 가슴 아프다. 일제시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믿고 자진해서 바다를 건너온 한국인들의 한과 슬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판이나 티니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고, 도착한 이후에도 열악한 환경과 노예처럼 부려먹는 일본인 주인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패전한 일본군이 자살절벽에서 뛰어 내릴 때 한국인들도 같이 죽임을 당했으며 살아남은 일부는 한국으로 귀국하고 차모로족과 결혼한 일부는 티니안에 남아 한국인 2·3세를 이루며 살고 있다.


곳곳에 태평양 전쟁의 흔적

티니안은 사이판이나 괌, 로타 등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흔적이 이곳 저곳에 남아있다. 섬 북쪽에는 2차 대전 당시 활주로로 쓰였던 넓은 길이 남아있다.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비행기 B-29가 출발한 곳이 바로 여기다. 원자폭탄을 탑재했던 곳에 원폭 탑재기 발진 기념비(Atomic Bomb Pit)가 서 있다.

과거 티니안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의 지휘부로 사용됐던 빌딩은 군데군데 폭격을 맞아 파괴된 쳐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준다. 강제징용 당한 한국인 병사들이 돌을 모래와 작은 자갈로 부숴 이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건물 안의 장교용 목욕탕에서 한국인 정신대가 모진 수모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전쟁 중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한국인들의 유골들이 발견된 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인 위령탑을 세웠다. 위령탑은 당시 죽은 한국인들을 화장한 화장터 바로 옆에 있다. 티니안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매년 제를 올리고 있다.

티니안을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Broadway)는 이 섬의 메인 도로로 11㎞ 정도 뻗어 있다. 뉴욕 맨해튼의 42번 도로를 닮았다하여 브로드웨이라고 불린다. 도로 가운데 심어진 불꽃나무는 꽃의 색깔이 마치 불꽃처럼 붉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 전체가 불타는 듯 꽃을 피우는 5월 무렵이 아름답다.

섬의 남쪽 끄트머리인 카라나스 고지 동쪽에는 자살절벽이라 이름 붙은 곳이 있다. 사이판의 자살절벽과 마찬가지로 미군에 쫓기던 일본 패잔병들과 가족 1만여 명이 투신자살한 장소다.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징용 당한 군인과 가족들도 있었다고 한다. 죄 없는 한국인까지 강제로 뛰어내리게 했다니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하지만 자살절벽 주위는 마냥 고요하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만이 과거의 한을 달래주고 있다.


바다가 뿜어대는 장관의 물보라

티니안에는 타이드 블로우(Tide Blow)라는 독특한 볼거리가 있다. 울퉁불퉁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은 파도에 깎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바뀌곤 한다. 타이드 블로우는 바위로 된 해안선에 생긴 여러 개의 구멍으로 파도가 치면 이 구멍으로 물이 10여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다.

분수가 물을 쏘아 올리듯이 물줄기가 위로 치솟기도 하고 비스듬하게 내뿜기도 하는 모습이 마치 고래가 숨을 쉬면서 물을 뿜어내는 것과 흡사하다. 이 물줄기는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이드 블로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때 물벼락을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입구에서 타이드 블로우 바로 앞까지 가려면 삐죽한 석회암 지대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데 바위 표면이 거칠고 날카롭다.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넘어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한다. 타이드 블로우 뒤편 바다는 유난히 색이 짙어 새하얀 물보라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주변의 황량한 듯한 풍경도 나름대로 운치 있다.

작은 섬이지만 몇 개의 해변이 있어 수영이나 해양스포츠를 할 수 있다. 타가 하우스 앞에 있는 타가 비치(Taga Beach)는 티니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모래밭은 불과 50m도 안될 정도로 좁지만 주변을 바위 절벽이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이다. 바위 절벽에서 멋진 다이빙을 연습할 수도 있다. 스노클링을 하거나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도 즐겨 찾는다.

섬 북서쪽의 출루비치는 모래사장이 좁고 바위가 많아 해수욕장으로 그다지 적합하지 않지만 스타샌드(Star Sand)라는 별 모양의 모래가 깔린 독특한 곳이다. 스타샌드는 행운이 따른다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


행운을 시험하는 카지노

별 보잘 것 없던 티니안이 최근 몇 년 사이 부각된 이유는 1998년 오픈한 ‘티니안 다이너스티 호텔 카지노’ 때문이다. 그전에는 다이버나 낚시꾼,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려던 사람들이 몇몇 찾기는 했어도 대단위로 티니안 관광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텔과 카지노가 생긴 이후 여행객이 급증했다. 평소에는 성실한 사람들도 카지노에서는 한번쯤 행운을 시험해 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마련.

특히, 여행지에서는 그 유혹이 커지기 쉽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것은 좋지만 심각하게 빠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기분 좋게 떠난 여행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이판이나 로타, 괌 등지에서 카지노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카지노는 24시간 오픈 하는데 블랙잭, 룰렛, 슬롯머신 등 다양한 게임이 있다. 낮에는 티니안의 명소와 해변,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저녁에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다이너스티 호텔은 별 다섯 개의 고급 호텔로 편안한 시설과 품위 있는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호텔에 한국인 직원들도 많고 한글 안내가 곳곳에 있어 편리하다.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이 섬에서 가장 넓은 해변인 타촉나 비치가 나온다.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스노쿨링 등 해양스포츠를 진행하는 회사 두 개가 모두 이 해변에 있어 해양스포츠를 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야 한다. 티니안은 아름다운 다이빙 포인트가 많기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출발하는 스쿠버다이빙 팀들이 많다.



불가사의한 라테스톤 유적, 타가 하우스

라테스톤은 북마리아나제도 일대에 남아있는 거대한 돌기둥으로 서기 500여년 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 차모로족이 집을 지을 때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티니안에는 라테스톤으로 쓰일 만한 바위가 없는데, 로타의 라테스톤 채석장 유적으로 보아 그곳에서 옮겨왔을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도구도 없던 당시 집채만한 바위를 캐고, 다듬고, 먼 섬으로 옮긴 과정 모두가 불가사의다.

티니안의 유일한 마을인 산호세 입구에 자리한 ‘타가 하우스(Taga House)’는 이 섬의 부족들을 이끌던 타가왕조의 추장이 살던 집이라고 전해진다. 타가 하우스에 남아 있는 라테스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는 부러지고 쓰러져 땅바닥에 누워있다. 온전하게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돌기둥은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높이가 6m에 이르는 크기로 보아 당시의 위세 당당하고 큰 규모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남아있는 라테스톤의 흔적으로 보아 한쪽에 6개씩, 두 줄로 라테스톤을 세우고 그 위에 타가 추장의 집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열대나무를 이용해 바닥과 벽을 세우고 지붕은 야자나무 이파리를 엮어서 덮는다. 라테스톤 기둥이 높았으므로 땅에서 집으로 올라갈 때는 사다리 같은 것을 이용했을 것이다. 추장은 높은 집에 버티고 서서 일대를 내려다보며 부족의 삶을 살피고 관장했으리라.

타가 하우스 옆에는 옛 차모로인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의 흔적도 남아있다. 지금은 물이 다 말라버렸다. 주변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해 놓고 있다. 잘 자란 야자수와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열대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옛 유적을 둘러보며 산책하기 좋다.



☞ 항공편 먼저 사이판으로 들어간 다음 사이판에서 페리나 경비행기를 이용해 티니안으로 이동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하루 한편씩, 대한항공은 월, 수, 금, 일요일에 사이판행 직항편을 운항한다. 4시간 정도 소요.

☞ 현지교통 티니안행 페리는 사이판 북서부의 스마일덕이라는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하루 6회 운항. 경비행기는 프리덤에어에서 하루 13회 정도 왕복한다. 페리는 50분, 繹舟汐穗?10분 걸린다.

☞ 렌터카 티니안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최근에 생긴 택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섬 관광을 하거나 렌트카를 이용한다. 렌트카 업체는 티니안 공항 안에 사무실이 있다. AVIS, 허츠, 아일랜더, 버젯 등 네 업체가 있다.

☞ 기후 북마리아나제도는 11월부터 6월까지는 건기, 7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에 속하며 연중 고온 다습하다. 우기라 하더라도 하루 종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소나기처럼 잠깐 내렸다 그친다. 따라서 여행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옷은 간편한 여름 복장이면 된다. 햇빛이 강렬하므로 모자와 선글라스를 꼭 챙기도록 한다.


글·사진 김숙현 여행작가

입력시간 2002/10/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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