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장적 사고론 재계 지지 못받아"

[인터뷰]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손병두 (61)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은 10월17일 최근 고조되고 있는 각종 경제불안 요인에 대해 “정부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기존의 경제정책을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시행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부회장은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상으로 ‘영국 병(病)’을 치유한 마가렛 대처를 꼽았다. 또 차기 대통령으로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자유시장 경제에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부회장은 “대선을 앞두고 기업들이 정치권에 줄대기를 한다든지 ‘각개전투’에 나서는 식의 후진적인 정치논리는 극복돼야 할 것”이라며 “누가 과연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기업을 잘 이해하는 가는 개별기업이나 개인이 선거과정을 통해 이심전심으로 동감하게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19일 멕시코 등 남미국가 방문에 나설 손 부회장과 세계 지식포럼이 열린 서울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만나 대선을 앞둔 재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기존 경제정책 안정적 시행이 더 중요


-대선을 전후 3개월 사이 경제불안 요인이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상반기 우리 경제는 민간소비와 수출에 힘입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설비투자와 경기심리 위축으로 불안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비와 건설 중심의 성장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과열기미를 보였고 이는 높은 가계대출로 이어져 부실화 가능성이 우려된다.

정부는 선거로 인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경제운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기존의 경제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시행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대선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대선 후보 누구도 차별성 있고 실현 가능한 경제정책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7월말 전경련이 주최한 제주도 최고경영인 서머 포럼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참석해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러나 당시 구체적인 후보별 정책이나 공약 등은 언급이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후보별 정책의 차별성이나 실현 가능성 혹은 경제계에 대한 이해도 등은 앞으로 정책공약이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언론에 의해 자연스럽게 個促?것으로 본다.”


-재계는 한때 후보들의 경제정책 등을 평가하고 이를 공표하겠다고 했는데.

“전경련이나 경제계가 특정후보에 대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누가 과연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기업을 잘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는 개별기업이나 개인이 선거과정을 통해 이심전심으로 동감하게 될 사안이다.”


-최근 ‘마가렛 대처’와 같은 인물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상이라고 지적했는데.

“환란 이후 우리경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부개입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는 자본이나 자원이나 기술이나 경영에서의 낙후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정착과 발전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에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의지력으로 ‘영국 병(病)’을 치유한 마가렛 대처와 같은 지도자가 절실하다. 많은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에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고, 공기업 민영화와 노동개혁, 산업ㆍ금융부문 구조조정 등을 단행할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위한 조건들을 꼽는다면.

“시장경제 시스템의 구축은 세계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부의 간섭을 줄이기 위한 규제 완화 또는 철폐,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관치금융의 철폐, 경제적 자유도의 확대 등 제도적 법적 시장제도 완성 등이 시급하다.

또 정당한 부의 축적과 이로 인한 부의 격차를 인정하는 한편, 무조건적인 평등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잘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더 잘하게 하고, 못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그 일을 그만두고 잘할 수 있는 부문으로 옮기게 하는 시스템은 바로 ‘불평등 즉 평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는다면.

“법과 원칙에 충실한 사람,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이를 실천하는 사람, 기업인을 우대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는 사람, 사회통합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노동·공공부문 개혁 아직 미진


-차기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우선적으로 제고해야 할 부분은 .

“모두가 시장경제를 주창하지만, 반(反)시장적 행태가 아직도 만연해 있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장에 대한 개입과 왜곡이 존재하고 있다. 비합리적인 관행과 제도가 효율이라는 명분 하에 정당화되고 있다.

반 시장적 사고는 우리가 세계 각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타파해야 할 과제다. 차기 대통령은 책임이 수반되는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제대로 된 시장경제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최근 ‘빅딜(대기업간 사업교환)’에 대한 기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는데.

“빅딜은 외환위기를 맞아 산업전체의 붕괴라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업간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기록보전을 위해 전경련이 참여한 부분을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청문회 준비용 혹은 회고록 작성 등으로 확대해석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지난 5년간 DJ정권의 경제정책을 평가 한다면.

“현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출범해 국민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했다. 또 경제전반의 경쟁력과 투명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 대외 신인도를 제고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기업부문은 ‘5+3원칙’에 입각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했다. 금융부문 역시 부실 금융기관 정리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시장기능을 상당부분 회복했다. 반면, 노동ㆍ공공부문 개혁은 아직 미진하고 반 시장ㆍ 반 기업적인 국민정서도 기업활동에 부담이 되고 있다.”


-정권 말 재계의 ‘목소리 높이기’ 톤이 최근 많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현안에 대한 경제계의 활동은 대내외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주5일 근무제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와 공감대 형성을 위하여 대 국민홍보를 주력하고 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등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동향을 분석하고 대처할 계획이다.”


-최근 전경련은 목소리를 줄이고 기업들은 제각각 ‘각개전투’에 나섰다는 지적이 있는데.

“대선을 앞두고 기업들이 정치권에 줄대기나 ‘각개전투’에 나섰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거 후진적 정치논리의 단면이다. 올 초 경제계가 이번 대선에서 일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하지 않고 정치개혁을 주장했던 본래의 취지를 공감해 주길 바란다. 언론에서도 기업이나 경제현안에 대해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바라보고 분석해야 한다.”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재계에서 ‘힘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김각중 회장님의 임기가 아직도 남은 상황에서 벌써 차기 회장의 선출문제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내년 총회가 2월에 개최되므로 그때가 임박해야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다. 원칙적으로 전경련 회장은 재계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그에 걸 맞는 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10/31 15:13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