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물고 도는 '대선 삼국지'

대선의 ‘빅3’인 이회창ㆍ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간의 역학구도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불기 시작하자 각 후보 캠프는 선거전략을 재빨리 수정하고 있다.

주적(主敵) 개념을 활용한 라이벌 공격은 그간 선거전의 상식이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턱밑까지 쫓아온 정몽준 의원 공세에 총력을 기울였고, 상대적으로 노무현 후보에게는 ‘솜방망이 펀치’만 날렸다. 자칫 선거판이 양강구도로 흘러갈 우려에서였다.

이에 정몽준 의원 측은 민주당 쪽은 일관되게 무시하는 대신 한나라당 공세에 맞불작전으로 나왔고, 노 후보 측은 열세인 지지율 회복을 위해 두 후보를 기득권의 화신이라고 비판하면서 국가개혁의 유일한 수호자를 자처하는 전략을 폈다.

그러나 후단협과 4자연대의 행보가 최근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익치 현대증권 전 회장의 폭로성 주장이 터져나오면서 정풍(鄭風)이 주춤거리자 각 후보 진영은 선거전략을 전원 공격형태로 급수정했다.


한나라 “鄭지고 盧 다시 뜰라”

먼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쪽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끈질기게 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던 병풍(兵風)이 검찰조사결과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여기에 북한 핵 문제와 이익치 전 회장의 폭로사건 등으로 대 DJ정권 및 대 정몽준 의원을 공략할 무기가 한결 다양해졌다.

정풍이 주춤거리고 주변 환경도 이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돌아가고는 있지만 고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정풍 차단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봤지만 ‘정이 지면서 노가 다시 뜨는 상황’이 재현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그간 자제했던 노 후보 측 공세에 고삐를 다시 죄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노 후보는 말로만 정치개혁을 한다’, ‘병풍으로 재탕 삼탕 백탕하는 민주당’ 등이란 논평을 내면서 노 후보를 상대로 한 맹폭에 나섰다. 그렇다고 정 의원에 대한 공세를 줄인 것은 아니다. 노ㆍ정이 후보 단일화를 할 경우 정 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여전히 칼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검증을 회피한 구태정치’, ‘거품인기가 빠진 정 의원’ 등의 논평을 내세우며 노ㆍ정의 지지율이 비슷하게 될 때까지 날을 세우겠다는 목표다. 최상의 시나리오인 ‘1강 2중’으로의 선거구도를 만들기 위한 적절한 수위조절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정 때리며 2위 탈환 공세

민주당은 정 의원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노 후보의 지지가 상승세에 있다고 판단하고 ‘정 때리기’를 통한 2위 탈환에 힘쓰면서 이 후보 공략도 병행하고 있다. 두 후보를 기득권과 보수진영의 구 정치인으로 몰아가면서 노 후보를 개혁성향의 유일한 주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민주당은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이 오히려 노풍 재점화의 계기가 됐다고 보고 11월중 정 의원을 제치고 이ㆍ노 양강체제로 12월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선대위 이미경 대변인은 “이익치 전 회장의 폭로로 현대전자 주가조작의 몸통이 정 의원으로 드러났다”고 공격했고, 임채정 의원은 “대북사업 중단 운운한 정 의원은 평화적 개혁세력도 아니고 검증도 거치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폄하했다. 또 국민통합 21은 ‘몽당(夢黨)’ ‘현대당(現代黨)’이라고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또한 병풍을 재점화하기 위해 정대철 의원은 “병풍의 실체를 위해 (이회창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씨를 소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 후보도 “병풍수사는 하다가 만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대만큼 노 후보의 지지율이 급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내심 애태우고 있다.


정몽준, 양강구도 굳히기 안간힘

가장 답답한 쪽은 정몽준 의원. 믿었던 4자연대가 사실상 불발되면서 지지율이 약간 하강 추세로 접어든 데다 이익치 전 회장의 폭로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그간 노 후보 공세를 애써 외면하면서 양강구도를 굳히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젠 3위권의 추격부터 뿌리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이에 정 의원 측은 그간 자제해 온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 구사하고 있다. 이 후보를 겨냥해서는 “자기만 잘났다는 독선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정면으로 공박했고, 노 후보 측 공세는 “지지율이 저조하자 근거없는 소설로 생채기내기에 나서고 있어 굳이 논평할 필요도 못 느낀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강구도를 굳혀 노 후보를 사실상 탈락시킨 뒤 최종 결선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정치권의 속성처럼 이번 대선구도도 주적과 잠재적인 적군이 혼재하던 구도에서 3자 모두가 선거당일까지 무한경쟁을 벌이는 ‘삼국전쟁(三國戰爭)’으로 치닫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1/01 16:44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