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21세기 新경영… 명품론

의지 ·역량·전략 접목시킨 3박자 명품론으로 미래 준비

10월23일 경기 과천 별양동 정부 제2종합청사 전철역 부근의 코오롱 본사 빌딩. 평소 오전 9시가 지나야 나타나는 검은색 BMW 리무진이 이날 따라 1시간 정도 빨리 정문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BMW 공식 딜러(판매대행 업체)인 HBC코오롱(전 코오롱 모터스)이 국내에서 30대 한정 판매한 BMW L7은 가격만도 2억3,000만원 대로 VIP용 차량. 그러나 이 차 뒷좌석에서 내린 VIP는 놀랍게도 감청색 스포츠 자켓에 티셔츠와 색 바랜 청바지 차림이었다.

2년 전 사내 ‘복장자율화’를 선언하고 스스로 이를 고수하고 있는 이웅열 코오롱회장(46). 그는 2000년 임직원을 대상으로 ‘변화를 이끄는 힘’이란 주제로 첫 사내강의를 한 후 이날 꼭 2년 만에 팀장급 이상 임직원 300여명을 대상으로 특강에 나섰다.

주제는 ‘비전과 자신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중 40대 선두 주자인 이 회장은 강연주제 만큼이나 자신감과 열정으로 기업경영의 ‘명품론’에 대해 토로했다.


베품의 철학 깊에 밴 명품(名品)주의

이 회장은 명품주의자다. 그가 입는 옷에서부터 구두, 벨트, 셔츠, 시계, 양복, 가방, 승용차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다. 오히려 명품이 아닌 것을 찾아보는 것이 빠를 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이를 놓고 재벌2세 ‘리치(Rich)’들의 공통점이라고 하기엔 그는 다소 특이한 ‘명품 족(族)’이다. 한 달에 최소한 한 두 차례 해외에 나가는 그는 각종 명품을 직접 접할 때가 많다.

공항 면세점에서도 꼭 명품 점에 발길을 멈추는 것은 이미 오랜 습관이다. 그러나 이젠 명품을 소유하기 보다는 가까운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명품의 수준과 질을 직접 공유하게 하는 ‘배품의 철학’을 그는 즐긴다.

한때 럭셔리 브랜드 루이뷔통 브랜드 지갑을 이십 여 개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준 후 일일이 사용 소감을 물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해외 출장을 가면 어김없이 유명 패션 제품들을 구입, 그룹 내 패션기업인 FnC코오롱에 전달한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직접 패션부문 회의에 참여해 디자이너들과 밤이 새도록 토론을 펼칠 만큼 그는 명품에 대한 조예가 깊다.

최근 코오롱은 루이뷔통과 공동으로 국내에서 패션 사업에 진출키로 했다. 이 회장은 10월4일 프랑스 파리에서 카르셀 루이뷔통 그룹(LVMH)의 패션 부문 회장을 직접 만나 국내시장에 공동 진출 방안을 협의하고 돌아왔다.

LVMH는 루이뷔통과 최고급 샴페인 ‘모에 샹동(Moet Chandon)’, 코냑 ‘헤네시(Henessey)’가 통합해 탄생한 명품 기업이다.

현재 패션ㆍ화장품ㆍ향수ㆍ주류ㆍ시계ㆍ보석 등에서 최고급 브랜드 30여 개를 거느린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 코오롱은 현존하는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히는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브랜드(LVMH그룹)를 내년 국내에 처음 들여오고 세계 유명 여성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라끄루아’ 를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코오롱 측은 “패션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 회장이 LVMH그룹과의 협력체계를 강화한 것은 명품의 선진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기법을 한 수 배우기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최고급 승용차 BMW의 국내 최대 딜러이기도 한 코오롱은 LVMH 패션브랜드외에 남성 골프웨어 브랜드 ‘잭 니클라우스’의 동남아시아 판권과 스포츠 명품인 ‘헤드’ 전제품, 세계적인 명품 오디오 덴마크의 ‘B&O(뱅 앤드 올슨)’, 일본 후지쯔의 PDP TV 및 홈 시어터를 수입ㆍ판매 중에 있다. 이 회장은 왜 이같이 명품 브랜드에 애착을 보이는 걸까.


3박자가 맞아야 명품기업

“음식점을 놓고 얘기해 봅시다. 맛과 서비스, 분위기 등 빠짐없이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뛰어난 ‘맛 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야구선수도 그렇죠. 공격ㆍ수비ㆍ주루 등 3박자가 맞아야 MVP 후보로 뽑힙니다.

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1등 기업이 되기 위해선 ‘해내겠다’는 의지(will)와 ‘할 수 있다’는 역량(can), 성공실현을 위한 전략(to do) 3박자가 경영에 접목될 때 비로소 기업도 ‘명품’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기업경영 3박자론)”

이 회장은 기업 경영에도 우리나라 고유 리듬인 3박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소위 ‘이웅열 식 명품론’이다. 그는 잘 알려진 3명의 인물을 3박자론에 따라 비교ㆍ분석했다. 우선 셰익스피어 소설의 주인공인 햄릿을 신념이 없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To be or not to be)는 바로 인간의 박약한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근거라고 이 회장은 지적했다. 또 개혁을 추진하다 쫓겨난 조선 중종에 대해서는 의지는 있지만 역량이 못 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고전의 인물인 항우는 신념과 역량은 있지만 난세와 고난을 해쳐나갈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와 기술적 역량, 철저한 제작ㆍ마케팅ㆍ판매 전략 중 어느 요소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명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명품론’이다. 결국 기업경영에도 이 같은 ‘명품론’은 예외일 수가 없다.

올해로 회장 취임 7년째인 이 회장은 올해 최대 실적을 올린 코오롱이 사업성장에 대한 신념과 실적은 뛰어나지만 전통적으로 보수적 경영기조 등으로 미래에 대한 지략이 없다는 점을 강렬히 비판했다.

이 회장의 부친인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한 때 실내용 슬리퍼 하나를 10여년간 사용해 재계에서도 ‘근검 절약’이라면 단연 그를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2세 경영인인 이웅열 회장에겐 선대의 근검절약 정신 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도전정신이 앞선다. 업그레이드된 핸드폰 모델이 출시되면 어김없이 이를 구입, 사용해보는 그는 신(新)기술의 트렌드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다.

최고경영인으로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말이면 색바랜 청바지를 입고 부인과 함께 코오롱 매장을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가 생생한 현장을 둘러보는 그는 깐깐한 ‘명품족’이면서도 결코 ‘티’ 내지 않는 소탈한 이면을 지녔다.

해외출장 중 최고급 호텔에서 직원들과 라면을 끓여먹으며 양주ㆍ맥주의 폭탄주 보다는 ‘쏘맥(소주ㆍ맥주)’ 20잔을 단 숨에 비워버리는 이 회장의 3박자 경영 ‘명품론’은 과연 앞으로 코오롱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열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11/01 17:22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