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준 가을 콘서트' 7년만의 화려한 외출

인생의 가을에 돌아온 영원한 '진고개 신사'

한국 스탠더드 팝의 대부 최희준이 7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199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요 인생 35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이후 국민회의 공천으로 가수 출신 1호 국회의원(안양 동안갑)으로 변신, 무대를 떠났던 최희준이 11월1일부터 정동극장에서 개인 콘서트를 갖는다.

이번 콘서트는 지난 3월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하면서 활동 재개를 선언한 최희준의 재탄생 무대. 이를 위해 지난 6월에는 후배가수 박인수 돕기 모금 공연과 재즈 1세대들의 음악회 등에 찬조 출연, ‘워밍 업’의 수위를 높여 왔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지하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최희준은 “정동극장 박형식 사장이 근사한 가을 콘서트를 제의해 응했지만 워낙 오랜만에 꾸미는 개인 콘서트라 걱정이 태산 같다.

하지만 문득문득 좋았던 옛날 공연 장면이 떠올라 훌륭한 음향시설을 갖춘 무대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이 전해주는 벅찬 전율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이번 콘서트를 결심했다”며 “솔직히 데뷔할 때처럼 떨리지만 나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그간 들려 드리지 못했던 노래들을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


“데뷔때처럼 떨리고 설렌다”

이번 공연은 깊어 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레퍼토리로 꾸며져 인생의 깊은 맛에 푹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또 빨강 노랑으로 단장한 낙엽들이 나뒹구는 덕수궁 돌담길 옆 400석 규모의 소극장 정동극장에서 열려 함께 온 가족ㆍ친구들과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월 1일부터 주2회씩 한달 간 진행되는 ‘최희준 가을밤 콘서트’는 첫날 공연부터 특별하다. 그 날은 1990년에 요절한 고 김현식의 기일. 최희준은 1988년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김현식의 신촌블루스와 한달 동안 공연했었다.

그는 “김현식은 아까운 후배였다. 당시 그의 노래 ‘사랑했어요’를 듣고 참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죽기 한달 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복수가 차서 힘들어 했던 그가 생각난다.

또 신촌블루스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던 김명수가 나의 대표 곡인 ‘진고개 신사’와 ‘하숙생’을 작곡한 고 김호길씨의 아들임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엄인호, 김명수 등 당시 신촌블루스 멤버들과 함께 김현석 추모시간을 마련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첫날 공연엔 김현식의 히트곡 ‘내 사랑 내 곁에’와 ‘사랑했어요’를 합창으로 들려준다. 최희준은 “많은 사람들이 김현식의 히트곡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그와 절친했던 음악 동료들과 함께 부르는 것이 더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의 특징은 스탠더드 팝의 대부 최희준과 한국 최고의 펑키 기타리스트인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이 만나 꾸미는 무대라는 점이다.

최희준은 가수생활 40여 년간 무대에서 비트 강한 록 밴드의 세션에 맞춰 노래를 불러본 기억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스타일의 두 정상급 가수가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대중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스탠더드 팝과 펑키록의 만남

팬들은 “부드러운 보컬의 최희준과 자극적인 펑키 리듬의 최이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세계를 걸어온 두 사람이 함께 공연을 한다는 사실은 놀라움이자 큰 즐거움”이라고 기대를 하면서도 내심 우려하는 반응도 숨기지 않았다.

최희준은 이에 대해 “우리 두 사람은 1995년 35주년 기념 음반 녹음 때 함께 작업을 한 경험이 있다.

특히 ‘약속’은 최이철만이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타 애드립이었다. 그 때 정성스런 녹음작업에 감동했던 기억이 가시질 않아 이번 공연도 함께 하게 되었다. 최이철은 음악적으로 편협하기보다는 어떤 장르의 음악도 자유롭게 수용하고 즐기는 사람이기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도 두 사람은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은 4년 전 명동성당에서 대부(Godfather)와 대자(Godson)사이로 맺어진 종교적 부자지간이다.

세션을 맡은 최이철은 “대부는 내 아버님과 미 8군 시절에 같은 밴드에서 활동을 하셨던 친아버지 같은 분이다. 고령이고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함께 연습을 해보니 오히려 95년 때보다 더 원숙하게 노래를 해 놀랐다. 시끄러운 음악을 주로 하는 우리 팀 멤버들도 선생님의 편안한 노래에 푹 빠져들었을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또한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고 이해해 주는 존경하는 대 선배의 반주를 맡게 되어 영광스럽다. ‘하숙생’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며 이번 공연에 큰 기대감을 표시한다.

최희준은 “나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록 밴드와 처음으로 콘서트를 시도하는 것은 침체된 우리 가요계에 모범을 보이기 위한 색다른 시도”라고 전제, “이런 시도가 후배들에게 가요의 발전을 일궈달라는 일종의 메시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가요계 원로다운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사실 7년 전 35주년 기념공연 때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젊어 보이려는 마음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당시 인기가 높았던 박상민의 ‘멀어져 간 사람’을 연습도 부족한 상태로 흉내내 본 것이 문제였다.

“실수를 해도 관객들은 즐거워하며 애교로 봐 주었지만 가사도 잊어버리고 멜로디도 틀려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고 최희준은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연습에 연습을 강행하며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만 하다.


후배들과 함께 꾸미는 뜻깊은 무대

이번 공연에는 또 오랜만에 추억의 가수들도 만날 수 있다. 총 14명의 후배들이 게스트로 나선다.

11월 1일 첫 공연에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정경화, 김동환이, 2일에는 이은미, 8일 정훈희, 한영애, 9일 신효범, 15일 노사연, 16일 박상민, 22일 김종환, 한경애, 23 일 들국화의 전인권, 29일 정수라, 30일 마지막 공연엔 권인하, 이수미, 옥희, 그리고 전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홍수환 등 가까운 후배들이 출연한다.

이번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은 저녁 10시에 열리는 심야콘서트라는 사실이다. “심야콘서트는 더 이상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다소 도발적인 공연 팜플릿의 카피에서 보듯이 50~60대의 중ㆍ노년 관객들에게 젊은 날의 낭만과 멋을 되찾아 주려는 정동극장의 모험적 아이디어다.

또한 관객들을 위해 기발한 보너스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공연 2시간 전부터 야외 쌈지마당에서 무료로 세계 명품 와인을 제공하는 ‘와인 페스티발’이 첫번째 이벤트. 두번째는 공연 중간에 관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최희준의 대표곡 하숙생 모창경연대회다. 마지막으로 50~60년대 소인이 찍힌 추억의 월급봉투를 가져오는 관객에게는 입장료를 20% 할인해 준다고 한다.


“매년 추억의 무대 갖겠다” 의욕

7년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오는 최희준은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한 두 차례 정기 콘서트를 생각하고 있다. 큰 무대는 벅차고 주로 소극장 위주로 내 노래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놓지 않겠다” 며 이번 공연이 일회성 공연이 아님을 강조한다.

1957년 서울법대 3학년 때 교내 장기 자랑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노래인생을 시작해 미8군 무대를 거쳐 1960년 ‘목동의 노래’를 필두로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진고개 신사’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종점’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만큼 수많은 히트곡 퍼레이드로 대중들의 심금을 울려준 최희준.

공연 전날 모처럼 만에 팬들과의 설레는 만남에 어린아이처럼 떨리는 가슴을 보듬으며 늦은 밤까지 노래 연습을 하는 그의 흐르는 땀 속에는 정성이 듬뿍 배여 나오고 있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1/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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