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대통령들의 ‘첫번째’

우리 정치인들은 대통령이란 직책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어떤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민주당의 김명섭(서울 영등포 갑구ㆍ3선), 강성구(경기 오산 화성ㆍ초선) 의원이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탈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다.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영국 센데이타임스의 편집국장(1967~81년)을 지낸 뒤 1985년 미국으로 건너와 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편집인을 지낸 헤롤드 이반스. 그는 98년 ‘아메리카의 세기’라는 책을 통해 독립 200년의 후반기(1889~1989년)를 정리했다.

이 책 속에는 56년 영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유럽장학기금을 받아 40주 동안 미국을 둘러보고 느꼈던 인상과 각 대학에서 연구한 미국 역사, 그리고 그 후의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확인한 미국의 역동성 등을 냉정하게 기술했다.

특히 미국의 대통령들에 관심이 조금 있는 이들에게는 제25대 윌리엄 맥킨리(1897~1901년)에서 41대 조지 부시(1989~93년)까지 16명의 대통령 프로필을 2면에 걸쳐 요약 한 것이 쓸모가 있을 것 같다. 특히 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대통령들이 미국 역사에 대통령으로서 다른 대통령과 다르게 남긴 ‘첫번째’는 무엇인가 라는 항목이 눈에 뛴다.

또한 이반스는 지난번 ‘어제와 오늘’칼럼(10월 31일)에서 소개한 오하이오대학 리차드 베더 교수의 평가에서 최악의 대통령의 수모를 당한 프랭클린 루즈벨트(1933~45년)를 다른 각도에서 평가 하고 있다.

이반스는 우선 루즈벨트를 “8년 이상을 대통령으로 지낸 첫번째 대통령. 세계 주요 민주국가에서 첫 장애인 대통령”이라고 ‘첫번째’ 항목을 기록했다.

그는 베더 등 오스트리아 경제학파가 2000년대 들어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고전적인 경제자유를 구속한 것으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뉴딜정책을 해석했다.

그는 뉴딜정책 덕택에 미국이 대공황의 삭막한 분위기에서도 극좌, 극우 등 극단주의로 빠지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할 수 있었다는 역사관을 펼쳤다.

또 그는 뉴딜정책으로 인해 2,000달러 이하이던 미국 노동자의 40%가 연 소득 4,000달러 이상의 중산층이 되었다고 고찰했다.

이반스는 또 “뉴딜 정책 덕분에 미국에 현대적 의미의 자유 라는 개념이 생활 곳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며 “이런 점에서 뉴딜 정책을 추진한 루즈벨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더 교수의 조사에서 1위에 오른 트루먼은 이반스에 의하면 루즈벨트 뉴딜정책의 근간인 노조의 지원, 재벌의 견제를 계속 이끌어나가 위대한 대통령에 근접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반스는 트루먼을 “20세기 들어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유일한 첫번째 대통령, TV로 국민에게 연설한 최초 대통령, 미국 흑인향상협회에서 연설한 첫 대통령”으로 기술했다.

트루먼은 “대통령이라는 직은 때로는 화를 내게 하는 힘을 주지만 결국 상처를 남긴다”고 그의 전기작가에게 말했다. 트루먼은 많은 편지를 친구에게 쓰는 것(상당수는 실제 보내지 않았음)으로 백악관에서 고뇌의 밤을 보냈다. 그에게 대통령 직은 “엄청난 노예 노릇”이었다.

이반스는 대통령 연구가들인 윌리엄 라이딩스 등이 ‘끔직한’(worst)대통령 1위로 뽑은 위런 하딩(1921~23)과 관련, “상원의원 출신 첫번째 대통령, 자동차를 타고가 대통령 취임선거를 한 첫 대통령,남북전쟁(1861~64)이후 태어난(1865년) 첫 대통령”이라고 쓰고 있다.

하딩은 대통령 직에 대해 스스로 말했다. “나는 재주가 별로 없는 작은 마을 출신 사내다. 한번도 대통령직을 잡으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기억 되었으면 한다.”

하딩은 일주일 두번씩 골프를 쳤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1차 대전 참가에 반대한 공화당 고립주의자들이 옹립한 후보였다. 1920년 공화당 지명전에서 제4위의 후보자로 열번 투표 끝에 후보자가 됐다. 투표에 참가한 16명 공화당 상원의원 중 13명이 반대 했지만 그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공화당 수뇌부 비밀회의에서 후보로 지명 되었다.

하딩은 재임 2년을 조금 넘겨 병사 했다. 그 후에 여러 스캔들이 터졌다. 이런 그는 베더의 조사로는 윌슨의 전쟁예산적자를 10%대로 끌어내려 훌륭한 대통령 3위에 기록됐다.

탈당한 의원들은 이반스가 대통령의 활동외에 왜 ‘첫번째’를 기술 했는지에 대해 생각 해야 한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이고, 대통령이 위대했는지 끔직했는지는 여론이 아니라 역사가가 평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반스는 그걸 알았기에 길게 대통령들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2장의 프로필 속에 움직일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역사적 사실을 ‘첫번째’ 항목으로 기록한 것이다.

탈당 의원들의 오늘은 어제가 되면 기록으로 남을 것임을 명심 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1/0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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