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성의 혁명인가 웃자람인가

그들의 공격은 가히 무차별적이다.

합법과 비합법 공간에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에서 그들은 자기 시대의 도래를 당당 주장하고 있다. 아무 것도 그들의 입성을 막을 수 없다. ‘섹스 군단’.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는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여자의 성기를 당당히 외치고, SBS-TV의 ‘아름다운 성’ 등에서는 출연진이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동작을 하는 등 섹스를 전면에 내세운 공중파 프로그램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미 ‘노랑 머리’, ‘거짓말’ 등 영화와 ‘O양 비디오 사건’이나 ‘서갑숙 포르노그래피 논쟁’ 등을 통해 한차례 익숙해진 테마들 아닌가. 251명과 섹스를 나눴다는 싱가포르 배우 애나벨 청도 이미 2001년 국내 대학에서 성에 관한 강의를 펼치고 갔다. 여기까지는 합법 공간이다.

그러나 음지에서 섹스는 왕성하게 웃자라고 있다. 인터넷의 포르노 사이트를 탐닉하던 10대가 대학생이 된 후 맞닥뜨리게 될 상황들을 정리해 보았다. 각 상황들은 픽션이 아니라 설문 조사나 상담실 창구에 접수된 것들이다.

대학생들이 보여주고 있는 갖가지 성의 행태는 쾌락 탐닉의 방편이기도, 인습을 벗어난 인간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기성 사회가 그 모든 행태를 싸잡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벌이는 원조 교제에서 계약 동거까지 추적했다.

2002년 1월 ‘솔로 탈출 도우미’라는 별호를 내걸고 동거자 매칭 서비스를 해 주는 한 회사가 제시하는 동거 계약서는 그들이 말하는 동거의 실상을 말해준다.

‘본 계약 동거는 두 사람이 동거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두 사람은 100일 동안 의무적으로 동거를 가져야 한다. 합의하에 헤어질 수 있으나 알아 가는 과정서 생긴 비밀은 제 3자에게 유포할 수 없다’는 요지다.

사적(私的)인 것은 결국 정치적인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대, 성의 혁명이란 결국 여성의 자의식 운동과 관련돼 있다. 교묘한 여성 차별과 성에 대한 억압 장치의 빗장을 해제하려는 노력과 맞물리지 않는다면 현재의 다양한 성 담론은 쾌락지상주의와 상업주의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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