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받는 이회창 대세론

1강2중 굳히기 vs 단일화 불씨, 마지막 승부수

“대세는 굳혀졌다. 남은 것은 시간과의 싸움뿐” (한나라당)

“아직 모른다. 단일화 가능성도 남아 있다” (민주당)

“지금의 조정기를 거친 뒤 다시 양강 구도로 올라갈 것” (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져 이번 대선 국면이 ‘1강2중’의 구도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나라당은 온통 희색인 반면, 민주당과 통합21의 움직임은 극도로 분주해졌다.

한나라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후보단일화가 되더라도 노-정 후보에게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오자 현상유지를 위한 입 조심에 나섰고, 민주당은 잇단 탈당도미노 속에 정 후보에 대한 단일화 요구 및 집안 단속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통합 21도 탈당파 끌어안기와 정 의원으로의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신당 창당파와 한나라당 입당파, 통합21 합류파 등으로 나뉘어 있는 민주당 탈당파들은 일단 후보단일화를 요구한 뒤 여의치 않을 경우 각자의 길로 흩어질 태세다.

그러나 후보단일화를 이뤄낼 만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데다 이젠 단일화 명분마저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현재의 국면은 더욱 이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호상(好喪)겸 호재(好材), 이 후보 부친상

한국갤럽의 11월4일 여론조사결과, 3자 구도에서는 이회창 후보(34%)가 멀찌감치 달아나고 정몽준(22.6%) 노무현 후보(19.0%)가 2위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MBC와 한겨레 신문의 조사에서도 이(35.9%)-정(20.7~22.3%)-노(19.0~21.8%) 순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대부분 장세동-권영길-이한동의 순으로 조사됐다.

3자 구도에서는 한나라당이 그토록 바라던 ‘1강2중’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 것. 여기에다 오래도록 괴롭혀온 후보단일화시의 열세를 완전히 만회한 점은 당 관계자들을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한국갤럽조사에서는 이-정 대결에는 38.1%대 37.1%, 이-노 전에는 42.1%대 34.9%로 앞질렀다.

MBC와 한겨레신문의 노-정 단일화의 맞대결 조사에서도 정 후보에게는 2.3~4.9%, 노 후보에게는 5.6~10.3% 포인트 차이로 크게 리드했다.

이런 절대 유리한 상황 속에 또 하나의 호재가 등장했다. 이 후보의 부친인 홍규 옹의 별세. 향년 97세로 호상인데다 충청권 연고의식이 약했던 터에 선친의 충남 예산 선영의 안장식 행사 등은 지역 주민들에게 ‘동향(同鄕)’ 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조문하면서 “이 후보에게 중요한 도움을 주고 가셨다”고 말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후보단일화 등의 마지막 변수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여론조사 결과 후보 맞대결에서도 승기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고, 단일화 자체가 명분을 잃고 있는 상황이라 당 관계자들은 한결 여유 있게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이불 뒤집어쓴 채 웃으며 시간이 왜 빨리 안가는 지만 걱정한다”는 세간의 말처럼 한나라당에겐 더없이 유리한 구도로 흐르고 있다.


“갈테면 가라” 속 단일화 요구 등 마지막 안간힘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지지율이 재상승 분위기를 타면서 2위를 달리던 정 후보를 위협하던 차에 후단협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믿었던 동교동계들도 들썩거리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노 후보는 정 후보에게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시간상의 문제 및 절차 등의 이견 등으로 허공속 메아리로 스러질 공산이 크다.

결국 반쪽짜리 민주당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관망세로 돌아선 동교동계 등의 악재로 지지 기반인 호남마저 흔들리고 있다. 노 후보측은 탈당 의원 수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하며 단일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도 어려워지면 결국 ‘뺄셈정치’로 끝까지 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탈당파들은 크게 세 갈래 길에 놓여 있다. 일단 자체 의원들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 노-정 단일화를 중재하겠다는 것이다. 단일화가 가시화되면 자민련과 이한동 의원 등과의 연대를 통해 힘을 보탠 뒤 종국에는 민주당-통합21-신당이 함께하는 범 반창(反昌)당을 만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로 인해 탈당파들은 자민련 및 이한동 의원에다 이인제 의원계까지 끌어들여 범 중부권 신당을 출범해 차기 총선을 기약하자는 쪽과 강성구 김명섭 의원 등 한나라당 입당 희망파, 소수지만 통합21 합류파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의 행보는 후보 등록이 임박해지는 11월 하순경에 최종 결정되겠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대세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어떡해” 고달픈 정몽준 후보

처지가 고달파진 것은 노 후보뿐이 아니다. 한때 3자 구도에서도 1위를 달렸던 정몽준 후보지만 이젠 단일화가 되도 이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가장 몸이 달아 있다.

정 후보는 11월5일 국민통합 21의 창당과 함께 후보로 선출돼 본격적인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민주당 탈당 의원들의 합류가 여의치 않고 당 내부에서도 잡음이 흘러나오는 등 안팎으로 분란이 일고 있다.

정 후보는 일단 노 후보측의 단일화 제의는 거부한 상태. 대신 국민 선호여론을 감안, 민주당식 국민경선이 아닌 후보간 합의 방식 등 다른 각도의 후보단일화를 꿈꾸고 있다.

노 후보가 제안한 경선은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통합21측이 불리하다고 보고 무작위 추출 등 여론조사 기법을 응용한 대등한 선거인단을 구성해 경선을 치르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단일화 총론에만 의견을 같이할 뿐 각론 합의까지는 선결과제가 산적해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더구나 경선을 실시할 경우 서로 상대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에만 전념하는 네가티브식 상황으로 흐를 경우 본선도 치르지 못하고 자멸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더욱 정 후보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1/08 10:33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