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간결한 스윙

세계 최정상급의 여자 프로들이 모두 출전한 가운데 벌어진 이번 CJ나인브릿지대회는 골프가 자연을 극복하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운동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제주도의 거센 바람은 천하의 소렌스탐 조차 맥을 못 출 정도로 무력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얼마나 차고 강했는지 보기만해도 뼈 속까지 스며 드는 것 같았다. 바람막이와 비옷으로 중무장 했음에도 움을 움츠린 채 연신 손을 호호 불며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를 관전하는 갤러리들은 평소 대회에서는 보지 못하는 스릴과 긴장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지독한 비바람 속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노련한 운영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골프를 하다 보면 종종 이처럼 추위나 강한 비바람을 맞게 된다. 아마추어 골프들의 경우 대부분 ‘오늘 운동은 망쳤다’고 자포자기 하지만 골프의 진가는 이런 열악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회는 큰 교훈을 남겼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서 첫날부터 유일하게 언더파 행진을 하면 우승을 차지해 미국 LPGA투어에서 소렌스탐을 견제할 유일한 선수로 더욱 각인되게 됐다. 이번이 어느 미LPGA 대회보다 코스 난이도나 세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세리가 초속 15.4m의 강풍 속에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인한 집중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중력은 곧 체력이다. 프로 선수에 있어서 체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골프에서 체력이란 단지 한 순간에 강한 힘을 쓰는 완력을 뜻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첫 홀에서 마지막 홀 퍼트까지 한결 같은 집중력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지속적인 체력을 말한다.

따라서 골프에게는 체력을 최대한 아낄 수 있는 경제적인 스윙을 해야 한다. 날씨 좋고 편안한 곳에서는 누구나 잘 친다. 하지만 경사가 지고, 눈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악조건에서 샷을 잘하려면 체력이 바탕이 된 강인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이번 CJ나인브릿리대회에서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체를 위주로 하는 ‘Up of Body’ 스윙을 구사했다. 이 스윙은 상체 보단 하체에 힘이 많이 실려 바람이 불거나 경사진 곳에서도 안정된 스윙을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상체에 힘이 안 들어가 바람이 불 때 유용한 컨트롤 샷을 구사하기도 편하다. 강한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을 이기려고 하기 보다는 바람과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다. 스윙이 크면 일단 맞바람이 불 때 톱 스윙 때부터 불안해 훅이 날 확률이 높다. 스윙이 불안하면 평소보다 손목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같은 7번 아이언을 치더라도 프로들과 달리 거리가 길었다 짧았다 하는 것은 바로 어깨 회전을 통한 스윙이 아니라 손목이나 팔에 의존하는 스윙을 하기 때문이다. 손목으로 하는 스윙은 처음 몇 번을 그런대로 맞을 수 있을지 몰라도 라운드 중반에 가면 힘이 달려 스윙의 강약 조절이 안된다.

김미현은 스윙이 큰 편이지만 나름대로 오랜 세월을 샷을 몸에 익혔기 때문에 좋은 스윙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김 프로가 좀더 간결한 스윙을 했다면 이번 대회에서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간결한 스윙은 정확도를 높여줄 뿐 아니라 악조건에서도 한결 같은 스윙 템포를 유지시켜 준다. 당연히 집중력도 높아질 수 있다. 이번 CJ나인브릿지대회를 보면서 비바람 속에서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도 보았겠지만 한편으로는 골프의 기초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골프는 역시 극한 상황에서 진가를 느끼게 해준다.

입력시간 2002/11/08 14:0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