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차나무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빨리 다가온 것같다.

그 10월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여행을 떠났다.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떠날 만큼 행복한 처지는 아니어서 일부런 떠난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진행되는 부득이한 일정에 밀려 남도의 한 산사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찰을 유명하게 해준 소박하고 다양한 부처님 구경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난 아주 행복한 식물과의 조우를 했는데 바로 차나무의 꽃이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계절에, 무심히 걷던 발걸음 옆에,특별하게 눈길이 가지않은 작고 보잘 것 없은 나무들에 달려 있던 그 희고 소담스런 꽃. 그래서 그 노란 수술은 동백꽃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월부터 십이월까지 찬서리를 맞으면서 더욱더 영롱해지는 이 고운 차나무의 꽃들 두고 운화(雲華)라고 했던가.

게다가 이 계절에는 차나무의 꽃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열매가 달리지만 지난해 맺어 놓은 열매가 여무는 이즈음 한쪽에서는 또 다른 꽃이 피고 있으니 아름다운 흰 꽃과 조랑조랑 매어 달리는 귀여운 열매가 함께 달리는 이즈음이야말로 차나무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 하여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하고도 한다. 사실 차나무는 우리 나라가 고향이냐 아니면 중국에서 들려온 나무이냐를 두고 논란이 많다. 기록으로 치면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 가지만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겸이 돌아오면서 차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다소 우세하다.

하지만 지금 지리산 기슭을 비롯한 곳곳에서 야생상태로 자라고 있는 차나무를 볼 수 있으며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 구태여 따져볼 필요가 있으려나 싶다.

요즈음엔 차의 종류도 많으니 도대체 차나무는 무엇이냐고 물을 만한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말려 만든 진짜 차는 녹차를 말한다. 일부에서 녹차보다도 선호하는 홍차는 분명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이기는 하지만 동방에서 귀한 녹차를 배에 싣고 서양으로 가져가는 동안 푸른 잎이 변질되어(발효) 생겨난 것임을 알고는 있을까?

차나무는 차나무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이다. 차나무의 꽃은 5장의 깨끗한 흰빛 꽃잎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꽃의 흰색은 우리민족에게는 백의민족의 의미를, 군자에게는 지조를 여인에게는 정절을 상징해 온 색이다.

딸을 시집보낼 때 예물에 차를 넣어 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차나무가 옮겨 심으면 쉽게 죽어버리는 성질이 있는 까닭에 이 나무를 본받아 다른 곳에 마음을 두거나 개가하지 말고 가문을 지키라는 무언의 약속이 숨어 있는 것이다. 혼례식을 끝낸 신부가 친정에서 마련한 차와 다식을 시댁의 사당에 드리는 풍속도 같은 연유로 생겨 난 것이다.

이러한 풍습을 봉차(封茶)라고 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결혼 전 시댁에 예물을 보내는 봉채(封采)라는 풍속이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라 한다.

차나무는 차를 만드는 나무로 모든 사람이 온통 잎에만 관심을 두지만 차나무의 목재는 고급 단추를 만들기도 하고 생울타리도 좋고 꽃과 잎이 아름다우니 정원에 심어 두면 좋을 듯하다 오래 전 전라도 보성을 중심으로 몇군데 다원(茶園)을 구경한 적이 있다.

다원은 쉽게 말해서 차나무 밭인데 생울타리처럼 가지런히 곱다랗게 정정해 놓은 그 정경은 정원처럼 아름답다. 허벅지 정도 높이의 차나무 이랑 사이 사이를 오가며 정결한 몸으로 어린 잎을 따는 여인의 모습은 더욱 더 아름답다.

줄줄이 이어지는 차나무가 이어 놓은 초록색 띠, 다원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톡특한 멋이 있어서 두고두고 그곳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쓸쓸해지는 계절엔 그곳에 찾아가 차나무의 늘 푸른 잎 사이로 매어 달리는 그 고운 꽃구경도 하고, 발을 쉬면 앉아 마시는 차에서 향긋한 다향과 다기에서 옮겨지는 따뜻한 기운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은 넉넉해 질까.

입력시간 2002/11/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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