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고추의 힘…침략자와 해충 "꼼짝마"


■고추-그 맵디매운 황홀
(아말 나지 지음/ 이창신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고추는 지독한 열매다. 한 입 베어 물면 네이팜탄이라도 터진듯 강렬한 전율이 온몸 구석구석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편의 황홀경 같고 고통의 묘한 쾌감 같은 이 맛에 세계인이 중독됐다.

지구상에서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고추의 맛을 즐긴다. 인도 출신 지휘자 주빈 메타는 고추 없이는 식사를 못하는 사람이라 늘 고추를 성냥갑에 넣어 갖고 다녔고 민중벽화로 유명한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도 광적으로 고추를 즐겼다.

멕시코와 인도에선 개와 고양이, 닭까지도 고추를 게걸스레 먹는다. 고추는 한국과 태국에서도 인기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에서 엄청난 고가품이었던 후추를 찾아 헤매다 후추의 유사품인 고추를 발견한지 단 50년만에 고추는 지구 반대편인 아시아까지 범선을 타고 전파돼 제5의 맛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고추의 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인 아말 나지가 쓴 <고추-그 맵디매운 황홀>은 고추에 얽힌 역사와 문화, 일화 등을 재미나게 소개한다. 저자는 콜럼버스가 고추를 유럽 대륙에 첫 반입한 스페인를 시발로 ‘원조 고추’의 본고장인 볼리비아와 세계에서 제일 매운 고추인 아바네로가 난다는 멕시코의 유카탄 등 페퍼 로드(Pepper Road)를 탐사했다.

저자는 이 여정에서 고추광, 고추 재배 농민, 요리사, 의학자와 약학자, 고추 사업가, 식물학자 등 고추와 단단한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 순한 맛의 피망에서 강력한 아바네로에 이르기까지 1,600여종에 달하는 고추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간다.

고추는 침략자나 해충을 퇴치하거나 노예를 위협하는 데 쓰였는가 하면 대상포진이나 감기를 치료하고 성욕을 촉진하는 재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고추에 빠져드는 이유로 ‘엔도르핀 이론’을 제시한다. 고추를 먹으면 심장이 뛰고 침과 콧물이 나오며 위장활동이 활발해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몸이 이렇게 되면 뇌는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엔도르핀은 일종의 환각상태를 만들어낸다. 엔도르핀은 쾌감을 낳고 사람은 더욱 매운 맛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유명 고추소스인 ‘타바스코’의 상표권을 둘러싼 100년에 걸친 법정공방, 유전자 변형 고추를 둘러싼 농장주와 농민 사이의 갈등까지 고추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과 인간의 탐욕도 그려져 있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11/1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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