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유착, 권모와 술수…무늬만 사극이네"

시대를 넘나드는 시대극 '대망'

스타는 대중 연예인의 몫만 아니다. 이제 스타메이커조차 스타로 부상하는 시대다. 스타는 고정 팬이 있어 문화 시장의 불안정한 수요를 어느 정도 안정시켜주고 관심을 끌기 때문에 홍보와 마케팅 면에서 절대 유리하다.

한국 드라마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명의 눈동자’ 와 ‘모래 시계’로 스타덤에 오른 작가 송지나와 연출자 김종학 PD가 만든다는 사실만으로 시청자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방송 전부터 눈길을 끈 SBS 사극 ‘대망’이 29%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하다 얼마전 23%(10월 26, 27일 방송분)대를 기록하며 주춤하고 있다.

‘대망’은 형식상 사극이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기존 사극과 전혀 다른 현대극에 가까운 드라마다.

1964년 KBS TV에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소재로 한 김재형PD 연출의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사극의 장을 연 이래 ‘대망’ 은 가장 파격적인 사극이다. 아니 현대극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대망’은 기존 사극과 다른 시청자 층을 형성하며 눈길을 끈다.

TBC의 ‘대원군’ ‘정경부인’, MBC의 ‘장희빈’ ‘한명회’, KBS의 ‘수양대군’ ‘임꺽정’ 등을 거쳐 ‘용의 눈물’ ‘허준’ ‘여인천하’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방송된 수많은 사극은 안방극장의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온 장르이다.

돼지 기름을 태워 연기를 내는, 당시로서는 첨단 기법을 동원해 촬영한 ‘국토만리’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는 최근 사극까지 제작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그 동안 사극은 큰 변모를 해왔다.

하지만 사극에서 하나의 원칙은 지켜졌다. 역사적 사실과 극적 상상력을 버무려 사극을 만드는 것이다. 픽션인 박종화 원작 소설을 극화한 ‘여인천하’도 이조실록에 나온 정난정의 짧은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며 정사 드라마를 표방하며 작가의 상상력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무게를 둔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 KBS 대하사극까지 주요한 소재와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정경유착

하지만 대망은 배경만 18세기일 뿐 모두 픽션이다. 아예 왕을 승조라는 가상적 인물을 내세워 드라마 속 역사적 사실의 개입 여지를 봉쇄해 버렸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거대상단을 운영하고 왕권에 야심을 둔 박휘찬(박상원) 슬하에 야망의 화신인 장남 시영(한재석)과 아버지의 권력지향적 삶이 싫어 민초들과 함께 상단을 지켜나가는 서자인 차남 재영(장혁)이 있다. 두 아들의 대결과 형제간 사이에 끼어 든 두 여인과 사랑이 ‘대망’ 을 이끌어 가는 양축이다.

드라마 ‘대망’ 의 출연진을 현대식 옷으로 바꿔 각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재계의 거물로 성장한 아버지가 장남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금력과 바탕으로 정계의 인물들을 만나 정경유착을 시도한다.

이복 아들인 차남은 아버지의 금권 지상주의와 재벌의 무자비한 자본주의 논리가 싫어 더불어 나누는 삶을 지향하며 아버지와 형에게 반기를 들고 일반 서민들과 함께 국민들이 주인 되는 기업들을 만들어 대항한다.

이 과정에서 정계 실세의 딸과 원칙을 지키며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부친을 둔 영민한 딸은 겉으로는 어리숙하지만 속내가 부드럽고 인간적인 둘째 아들에게 사랑을 느낀다. 야망에 가득찬 큰 아들은 권모술수를 써 동생의 연인인 정계 실세의 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는다.

요즘 트렌디 드라마나 현대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선악의 대결, 출생의 비밀, 형제간의 삼각관계 등이 총동원된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런 때문인지 작가 송지나는 방송전 “이 드라마는 사극이 아니다. 조선후기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별로 구애받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10~20대가 주요 시청자층

기존 사극에 볼 수 없는 것은 이 것뿐만이 아니다. ‘홍국영’ 등 일부 사극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현대식 대사 사용을 ‘대망’에선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 “했잖니” “했니?”는 보통으로 쓰이고 우리가 현재 언어생활에 사용하는 말투 그 자체가 드라마에서 사용된다.

등장인물의 의복은 조선시대 후기 의상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원색과 디자인이다. 극의 흐름에 있어 주요한 배경 음악은 더욱 현대적이다. 바이올린, 기타, 드럼, 신디사이저 위주로 악기가 편성됐다.

주제가인 ‘열정’은 완전한 현대가요다. 여기서 김종학 PD는 할말이 있을 듯하다. “몇십년 된 사극 역사의 밑동을 흔들어보고 싶었다. 기존 사극들은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했던 만큼 새로운 인물 창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이런 때문인지 '대망' 은 기존 사극과 다른 시청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사극의 주요 시청자층은 30~50대이지만 ‘대망’은 기존의 트렌디물이나 현대극을 많이 보는 10대와 20대가 주요한 시청자층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과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10대와 20대에선 ‘대망’이 각각 5%포인트와 3.7%포인트 앞서지만 30,40대에선 ‘제국의 아침’은 4.1%포인트, 3.4%포인트 차이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대망’은 스타 작가와 연출자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회당 2억원이라는 한국 드라마사에 사상 최고액의 제작비, HD방식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연속극, 장혁 한재석 손예진 이요원 등 호화 캐스팅, 와이어 액션 등 무협적 요소 가미 등으로 화제에 올랐다. 그리고 방송 초반 시청자의 시선 잡기에도 성공했다.


현란한 볼거리로 포장, 실망감도

하지만 문제도 많다.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실험으로 사극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초반부가 진행된 6회분 방송까지 기대보다는 실망이 더 크다. 새로운 인물과 주제를 전달하겠다던 제작진의 의도는 지극히 표피적인 트렌디 드라마의 기법과 현란한 볼거리로 포장돼 전달되고 있다. 독창적인 시도나 드라마 전달 방법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에 색다른 고전 의상을 입힌 것뿐이다.

시청자는 이제 수준이 높다. 제작진이 얕은 수를 쓰면 금세 그 수를 읽는 혜안을 갖고 있다. 대중문화 세계에선 스타의 자리에 오르기도 쉽지만 추락하기도 쉽다.

이 시대의 스타 작가 송지나와 스타 연출자 김종학 PD는 스타덤에 오를 때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대망’을 통해 토해내야 그들의 스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2/11/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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