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사랑과 평화(下)

데뷔 음반은 슈퍼그룹의 탄생을 알린 팡파르였다. 1978년 아들과 매니저 이름으로 발표된 이장희의 창작곡 ‘한동안 뜸했었지’가 세상에 울려 퍼졌을 때 대중은 물론 연주자들도 생경한 이들의 사운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를 물어뜯고 불태운 파장만큼 최이철의 감각적인 펑키 리듬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베토벤의 ‘운명’ 등 클래식을 록과 크로스오버한 김명곤의 화려하고 독특한 편곡, 이남이의 유머러스한 스테이지 매너는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달빛’에서 들려준 최이철의 마우스 튜브 연주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서울나그네 멤버로 활동했던 이철호가 ‘검은나비’로 가고 대마초 파동에 휘말린 이남이 대신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탈리아 출신 베이스트 사르보가 송창식의 주선으로 녹음작업에 참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소위 ‘찔러대는’ 디스코 열풍으로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성공적 데뷔에 흥분한 이장희는 비정규 음반 ‘DISCO-1979년’을 발 빠른 상업적 기획으로 발표했다. 2집에 앞서 발표된 이 음반은 마스터 녹음이 도난당해 서라벌과 대도레코드에서 같은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사랑과 평화의 연주는 반주 수준에 머물던 밴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리더 최이철은 79년 문화체육관 공연 때 구경 온 벤쳐스 매니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나그네’가 집중적으로 방송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걸작으로 평가 받는 흥겨운 디스코 풍의 2집에선 ‘장미’가 또 한차례 빅 히트를 터트렸다. 또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여왕벌의 행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등 디스코 풍으로 편곡된 클래식 연주 곡들과 ‘축제’ ‘솔바람’ ‘할미새’ 등 창작 연주곡들은 한결 무르익은 음악 빛깔을 뽐냈다.

2집 작업 땐 교통사고로 사망한 드럼의 김태홍 대신 최경희가 합류하면서 최이철, 김명곤, 이근수, 최경희, 송홍섭의 2기 사랑과 평화로 재편되었다. 하지만 1980년 8월 리더 최이철이 대마초로 구속되고 김명곤과의 음악적 불협화음이 빚어지면서 공백기가 찾아왔다.

3년 후 최이철은 검은 나비의 유현상을 픽업해 펑키 향내가 빠져버린 3집 ‘사랑과 평화 넋나래-태양음향. 1982년’을 발표했다.

신예 하덕규가 3곡에 작사를 해주며 힘을 실어 주었는데, 최이철은 “당시 대마초로 구속되는 등 매니저 문제로 혼란스러워 좋은 곡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이후 1988년 4집이 발표될 때까지 김광민, 정원영, 문영배 등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갔지만 별다른 음악적 성과는 없었다.

최이철도 새 음반 발표보다는 건반 이호준과 음악활동을 함께 하고 싶어 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합류해 활동을 하면서 신촌 야누스 클럽, 신사동 함부르크 등에서 퓨전 밴드를 이끌었다.

3기 사랑과 평화는 용인에서 농사를 짓던 이남이를 설득하면서 시작됐다.

드러머 이병일과 최태일, 한정호 등 젊은 뮤지션을 끌어들여 빅 히트곡 ‘울고싶어라’와 ‘노래는 숲에 흐르고’등을 수록한 4집을 88년 발표했고, 우연히 밤무대에서 ‘울고 싶어라’를 들은 MBC PD에 의해 인기 프로였던 ‘일요일 밤의 대 행진’ 무대에 섰다. 5공 청문회라는 시국 상황과 맞아 떨어져 듣는 이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울고 싶어라’는 이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남이의 솔로 독립으로 팀은 또다시 휘청거렸다. 최이철은 키보드 박성식과 베이스와 보컬 장기호를 영입해 퓨전 재즈 그룹으로 팀 컬러를 일신한 뒤 히트곡 ‘샴퓨의 요정’이 수록된 5집 앨범을 발표하며 4기 사랑과 평화를 가동시켰다.

이들은 사물놀이와 록을 퓨전한 ‘덩더쿵’이란 곡을 들고 ‘환태평양 락 오사카 음악제’에 출전하고 경주 엑스포 특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신입 박성식과 장기호가 “가스펠 음악을 한다”며 남성 듀오 ‘빛과 소금’을 결성해 떠나는 바람에 키보드 안정현과 드럼 이병일, 베이스 이승수로 교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재즈에서 레게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수용해 6집 ‘못생겨도 좋아’, 7집 ‘얼굴 보기 힘든 여자’ 등을 발표하고 콘서트 활동으로 팬들과 교감을 가졌다. 또 오리지널 멤버지만 앨범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보컬 이철호가 재가입하며 95년 피리와 태평소를 가미한 음반 ‘Acoustic Funky’를 발표했다.

1999년 리더 최이철과 키보드 안정현이 음악적 갈등으로 끝내 팀을 탈퇴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기타 송기영과 키보드 이권희를 영입해 6기 사랑과 평화를 구축,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랑과 평화는 내년에 ‘철가방 프로젝트’의 리더인 이남이와 ‘유라시아의 아침’을 이끄는 최이철과 함께 기념 음반 및 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한국 펑키 록 연주의 대가 최이철은 “자극적인 음악보다는 명상적이고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 나아가 조상들의 뿌리를 찾는 의미 있는 창작작업을 하고 싶다”고 끝없는 탐구 열정을 드러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1/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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