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출하는 2002 성담론] "섹스가 밥먹는 것과 뭐가 달라요 "

20대 한국인의 성 체험담, 통념 뒤집는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

10대의 성이 갈길 모르는 풋풋한 아우성이라면 20대의 성은 육(肉)의 성(聲)이다. 그들은 자기 욕구에 솔직하고 당당히 주장한다. 우리 시대,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해방된 20대가 생각하는 섹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난 시대의 억압과 단호히 결별한 그들에게 섹스는 무엇보다 당당한 주체다. 그들에게 성이란 노골적으로 기호화돼 자신의 의견을 충격적으로 제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그들은 섹스라는 통로를 통해 가볍게 혹은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경험후 비로소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만나는 동안 다른 이와의 성 관계만 없다면 그것이 순결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섹스는 그냥 물 마시듯 자연스런 생활일 뿐이다.” “처음엔 순결을 잃은 것이 많이 걱정스러웠으나 지금은 안 그렇다. 다른 사람들과 갖는 성 관계를 통해 재미있게 산다.”

이성환(28ㆍ아주대 컴퓨터 공학과 3학년)씨가 인터넷을 통해 모은 또래의 성체험담 가운데 일부이다. 이씨가 최근 펴낸 <옐로우 파일>(책읽는 사람들 펴냄)은 여자 친구와 함께 인터넷상으로 직접 수집한 자료가 주는 생생함이 특히 돋보이는 섹스 보고서다. 각 단원 시작마다 가상의 20대 남녀가 성에 대해 내뱉는 진한 대화를 실어 도입부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남자 19세, 여자 21세에 첫경험

본문의 서술은 결코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애무, 오랄 섹스, 동성애, 항문 성교 등 실제 섹스의 각론에 대한 통계와 해석은 21세기 한국판 20대 킨제이 보고서라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첫경험 이후의 남녀 관계 또는 첫경험시 통증이나 출혈의 여부 등 일반적 섹스 리포트라면 별 비중을 두지 않았을 법한 문제에 대해 한 단원씩 할애한 대목이 독특하다.

“2000년 8월부터 12월까지 동갑의 여자 친구와 컴퓨터에 달라 붙어 20만여 통의 e메일을 띄운 결과죠. 1,100여통의 답장을 받았어요(남자 587명, 여자 541명).” 이에 의하면 한국의 도시 거주 청소년이 첫 경험을 하는 나이는 남자 19세, 여자 21세이다.

의외나 충격적 결과가 있었을 텐데? “없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또래의 상식과 별로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룹 섹스나 스와핑 등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아 설문에서 제외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반대로, 상식이 반전되는 결과도 있었다. 순결의 상징으로서 처녀막의 경우, 첫경험 때 혈흔이 나온 것은 응답자의 6할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첫째다. 오르가즘에 대한 조사 결과도 20대의 섹스에 관한 킨제이 보고서를 뒤엎는다.

킨제이 보고서가 오르가즘은 30대가 돼야 느낀다는 결론을 내린 반면 한국 20대의 오르가즘에 대해 분석한 이 책은 한국의 20대는 100회 이상 섹스 경험자의 90% 이상이, 50회 이상의 경험자의 70% 이상이 느꼈던 것으로 집계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며 실시하는 순결 교육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사 결과,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실제적인 성교육과 피임에 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조사 결과의 분석과 집필을 끝내고 이씨가 탈고한 것은 2002년 5월.

이씨는 “이제 섹스라면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앞으로 전공인 컴퓨터 공학 관련 공부나, 왜곡되지 않은 성을 위한 운동쪽으로 관심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가 처녀냐, 비처녀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며 “나는 정선경처럼 편하고 엉덩이 예쁜 여자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욕망만이 남은 인간의 모습

이제 자지(남자 성기의 순 우리말)는 더 이상 쾌락과 무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적어도 김대중(28ㆍ서울대 산업디자인4)씨의 <자지 도시의 아름다운 추억>(새만화책 펴냄)을 읽고난 뒤라면 말이다. 성기를 쾌락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는 이 시대, 저자는 자지에 대한 진지한 통찰로 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0.3밀리 촉의 펜으로 세묘한 이 만화의 주인공은 모두 자지 모양의 머리를 한 인간 군상이다. “성형 수술로 얼굴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세상인데, 이러다간 미래에는 성기만이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죠.” 욕망만이 남은 인간, 욕망의 기호로서의 인간을 그렸다는 말이다. “욕망과 욕망만이 몰려든 도시에 사는 인간 군상을 그려봤어요. 그림들은 곧 나의 이야기 또는 대리 만족일 수도 있죠.”

9월 하순부터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통해 초판 1,000부가 발매, 한달만에 800여부가 소화되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제목이 자극적이고, 내용은 모두 성기 그림이어서 곤란하다”며 진열을 거부했던 일부 서점도 있긴 하다. 그의 고민은 제쳐두고 겉모습만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2001년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제작 지원 사업으로 700만원을 지원 받아 하루 서너 시간씩 방에 박혀 작업한 결과다.

진중한 이미지들로 덧씌워져 있는 그의 작품은 자신의 개인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80, 90년대 운동권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최후의 진지한 세대였죠.” 2000년부터 서울대 만화동아리 ‘순간 이동’에서 만화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그의 출발점에는 “다시 못 올 진지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연세대 기계공학과 94학번이었던 그는 매체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학교로 옮겼다. 그의 짙은 비판 의식에는 군복무 이후 우만연(우리만화연합)의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과정(1년)을 수료한 내력도 한몫을 한다.

작가에게 물었다. 왜 보지 도시라고는 하지 않았는가, 혹시 페미니즘적 배려인가? “해볼까도 했지만, 확실하고도 공격적인 이미지를 끌어낼 수 없어서 포기했다”고 그는 답했다.

이 책을 본 반응은 다양하다. 기성인들의 경우, “징그럽다”, “어렵다”, “도발적이다”는 등의 반응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사는 곳이 곧 욕망의 도시 아니냐”며 이해의 시선을 보내오기도 한다. 여학생들은 남성 성기를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운 데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를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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