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위대한 독재자

채플린 최초의 유성영화, 1인2역으로 히틀러의 야망 그려내


■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1940)

감독 : 찰리 채플린
출연 : 찰리 채플린(찰리/힝클), 잭 오키(나폴리니),
폴레트 고다르(한나) 각본 : 찰리 채플린 촬영 : 칼 스트러스, 롤랜드 H. 토더로 음악 : 찰리 채플린, 메레디스 윌슨 제작사 : 유나이티드아티스츠
(United Artists Corporation)

라임 라이트, 시티 라이트 등과 함께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이 감독과 제작·각본·주연을 겸한 영화로, 그야말로 ‘채플린이 만든 채플린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음악까지 그가 관여했다.

요즘처럼 전문화되지 않은 시대의 영화이기에 이런 독무대적인 활약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천부적 재능과 엄청난 열정이 없으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채플린 시대의 영화는 대부분 무성 영화이기 때문에 127분의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혹시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채플린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채플린의 최초 유성 영화라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복원판이기 때문에 구두 발자국과 같은 섬세한 소리까지 잡아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필름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비가 오는’ 현상도 스크린에 없다. 때문에 음향면에서나 화질면에서나 아쉬워 할 것 없이 편하게 빠져들 수 있다.

채플린의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채플린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안다 하더라도 유명한 희극배우 혹은 팬시점의 캐릭터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와 그의 영화가 왜 지금까지 유명세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을 먼저 살펴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위대한 희극배우이자 예술영화 감독

우선 그를 수식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표현 두 가지를 들자면 첫째는 세계 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희극 배우라는 것, 두 번째는 가장 위대한 예술영화 감독이라는 것인데, 한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결혼을 네번이나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기로 위대한 감독이니 진정한 배우니 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닌데, 그들과 채플린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평론가들의 그 흔해빠진 띄우기 식의 호들갑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위대하다’거나 ‘진정하다’거나 求? 영화 예술인은 많다.

특히 분야를 막론하고 정통쪽을 거론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희극영화만을 놓고 보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희극영화도 그냥 웃기기 위한 영화라거나 어설픈 메시지를 깔아놓고 억지로 웃음에 무게를 실어 보려는 식의 만만한 희극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채플린 영화의 웃음 속에는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메시지가 풍자적으로 깔리는 것이 특징인데, 웃으면서 혹은 웃고 난후 그것에 대한 공감대를 진하게 느끼게 만드는 그런 마법적인 효과가 채플린 영화의 메카니즘이라 하겠다.

그가 표현한 예리하고도 철학적인 사회 모순의 고찰은 그의 영화가 예술적 가치를 가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사회 날카롭게 풍자

혹자는 채플린과 같이 눈물의 요소를 넣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한다든지, 문명과 사회 모순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넣어 공감을 끌어 내려 하는 것은 희극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채플린의 영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설교적인 성격 또한 강해 진정한 희극의 본질을 외면한 삐뚤어진 희극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채플린의 작품에서는 본질적으로 내면적인 부분에 호소이라기 보다는 자유 해석에 따른 공감에 맡기고 있다.

그 웃음의 본질이 어디에서 출발하느냐는 물음으로는 웃음을 만드는 소재 선택의 자유라고 할 수 있으므로 비판의 여지를 끌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맥락에서 볼 때 웃음을 통해 인간 사회 모순을 날카롭게 분석해냄으로써 인간 자신을 표현하는 휴머니즘 성향의 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채플린이지만, 그의 영화를 주의 깊게 보게 되면 인간에 대한 증오나 혐오같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채플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세상에는 탐욕스레 지식을 구하는 인간이 있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기를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순수한 쪽은 아니었다. 지식에 대한 사랑을 쫓는 것은 아니고 오직 무지한 삶에 대한 세간의 모멸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짬이 나면 중고 서점을 찾아 다녔다.”라고 썼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채플린의 사회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잘 대변해 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독재자' 디지털 복원판

이번에 재개봉된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1988년에 ‘독재자’라?제목으로 이미 국내에 개봉됐다. 물론 이번 작품은 ‘독재자’의 디지털 복원판이다.

히틀러를 상징하는 힝켈과 그와 흡사한 외모를 가진 유대인 이발사, 독재 정치가(학살자)와 평범한 서민(학살당하는 자)이라는 구도를 세워 정반대의 두 성격을 채플린이 1인 2역으로 소화한 이 영화에는 세계대전이라는 설정 속에 ‘토메니아’와 ‘박테리아국’이라는 웃기는 이름의 가상국가가 등장한다.

웬지 착하고 선량한 이미지를 풍기는 토메니아의 유대인 사병 찰리<채플린 분>가 전쟁터에서 슐츠라는 장교를 구하게 되는데, 그와 비행기를 타고 가던 도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무려 20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때쯤 토메니아에 힝켈이라는 독재자가 등장하여 난데없이 유대인 탄압정책을 펼친다.

퇴원한 찰리는 다시 이발소로 돌아간다. 어느날 이발소에 새겨진 유대인 표식을 지우며 저항하려던 찰리는 힝켈의 돌격대원들에게 붙잡히지만 과거에 구해준 슐츠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한편 힝켈은 유대인 갑부에게 대출 요청을 했는데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유대인 탄압정책에 강도를 더하는 비열함을 보인다. 이웃한 박테리아국의 독재자 나폴리나와 맺은 불가침조약을 어긴 채 오스텔리히를 침략한다.

힝켈에게 찍혀 미움을 사게 된 슐츠와 함께 수용소로 간 찰리는 군복을 훔쳐 입고 탈출하다가 힝켈과 비슷한 외모와 훔쳐 입은 제복 덕분에 군사령관들에게 힝켈로 오인받아 오스텔리히 정복사업 추진을 자축하는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연단에서 평화, 인간애의 중요성을 말하고 희망을 호소한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40년에는 채플린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적 직관으로 유대인 수용소와 힝켈의 일그러진 야망을 그려냄으로써 앞으로 진행될 히틀러의 야망을 정확하게 꼬집어 냈고, 그에 따른 히틀러의 만행을 예언했다. 시대를 초월한 명작 ‘위대한 독재자’는 차분함이 기분 좋게 스미는 이 가을 꼭 만나 보아야 할 명작이다.

윤지환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2002/11/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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