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프레소] 이주한의 ‘마일스 송 북’

트럼펫 연주에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소리 내기부터 만만찮다. 일단 소리를 냈다 하더라도 셋밖에 없는 밸브를 조작해 음정 맞추기가 그 다음 문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주하던 루이 암스트롱이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데에는 윗입술 가운데 선명하게 찍힌 굳은 살(callous)이 단단히 한몫한다. 오죽 힘들었으면 입술에 굳은 살이 배길까.

이주한(37) 역시 그렇다.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 입술에 트럼펫 취구(吹口)를 대고 부는 습성 덕에 그의 입술 굳은 살 역시 약간 삐딱하게 박혀 있다. 또래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트럼페터)가 드문 현실에서 그는 자연히 돋보인다.

자신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는 이번에 새삼 확인시켰다. 힘든 악기를 더 힘들게 만들어 연주하는 셈이다.

4집 ‘마일스 송 북(Mile’s Song Book)’에 수록된 18곡 모두가 뮤트(mute)를 써서 연주됐다. 국내에서 뮤트 트럼펫 연주는 가뭄에 콩나기나 다름없지만, 한술 더 떠 뮤트만으로 이뤄진 트럼펫 연주집은 전무했다.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로써 이주한은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한 셈이다.

“가수들의 음반 취입 때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일이 잦다 보니, 내가 과연 재즈를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슬슬 들더군요.” 뉴욕서 살았던 1982년부터 키워 온 진짜 재즈 뮤지션에의 꿈을 그가 다시 기억해 낸 것이다.

‘약음기’라고도 불리는 이 도구는 원래 클래식에서 유래했다. 섬세한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소리를 있는 그대로 낸다면 주변의 섬세한 악기에 비해 너무 튀는 까닭에 조화를 망쳐 버리는 것이다. 클래식에서는 그래서 뮤트가 ‘약음기’로 해석된다. 소리를 죽이는 도구라는 뜻이다. 재즈도 그럴까.

개성의 음악, 재즈에서 뮤트는 소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밸브를 만지지 않는 손으로 둥그런 주발 같은 뚜껑을 나팔 입구에 뗐다 붙였다 하면 “우왕-우왕”하는 독특한 효과가 난다. 형태를 따서 ‘컵 뮤트’ 또는 소리를 따서 ‘와 와(wah wah) 뮤트’라고 한다. 강렬한 효과다.

또 하나, ‘하몬(harmon) 뮤트’가 있다. 주발 가운데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은 뒤 트럼펫 나팔 입구에 닿을락 말락하게 고정시킨 뮤트다. 강렬한 효과의 정반대로 대단히 섬세하고 서정적인 소리가 난다.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애용한 뮤트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음정을 맞추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가느다랗게 흘러 나와 예리하게 솟아오르는 소리의 매력은 여타 악기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영화 ‘Mo Better Blues’ 테마 음악에서 선보이는 뮤트 트럼펫 소리는 차라리 요염하지 않은가. 그 요염함으로 똘똘 뭉친 앨범이 바로 이주한의 신보다.

‘When I Fall In Love’, ‘Bye Bye Blackbird’, ‘All Of You’ 등 발라드에서‘Seven Steps to Heaven’, ‘Solar’ 등 박진감 넘치는 곡까지 폭넓은 스펙트럼도 이채롭다. 그러나 한국의 팬들은 ‘My Funny Valentine’ 같은 발라드 넘버에 더 귀를 기울일 듯 하다.

이 음반은 특정 대가를 염두에 두고 그에게만 집중하는, 진정한 헌정품이다. 이주한은 이로써 산을 넘었고, 이미지만을 탐닉해 온 국내의 재즈에 하나의 큰 화두를 던졌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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