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현실로 나타난 악몽들

엊그제 방영이 끝난 MBC TV의 외화 시리즈 과학수사대(CSI)는 제목 그대로 사건 현장에서 최첨단 장비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수사물이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길 그리섬 반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한 팀워크를 형성한 5명의 수사팀은 철저한 현장 조사, 예리한 상황 판단, 첨단 기술을 이용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 진범을 가려내는 ‘과학수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제작은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사로 꼽히는 게리 브룩하이머가 맡았다. 아마겟돈(1998), 진주만(2001) 등 박스오피스에서 1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그가 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한 TV 추리극을 만들었으니 인기를 끈 건 당연하다.

CSI보다 1세기 정도 앞선 20세기 초에는 해결하지 못하는 범죄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추리 능력과 머리를 가진 탐정이 있었다. 우리 시대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다.

영국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소설 속의 주인공 홈즈는 데뷔작 ‘주홍색 연구’에서부터 조수인 J.H.와트슨과 함께 종횡무진 사건 현장을 누빈다. 그는 범인 체포 후 감탄하는 수사관(존스 경감)에게 “자네는 보기만 하고 관찰은 하지 않는군.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틀린 거야”는 명언을 남겼다.

20세기에는 ‘관찰’만 잘하면 범인 찾기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첨단과학과 현장 분석 및 재구성, 논리적 두뇌 등이 없으면 사건 해결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100년의 시차를 둔 두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증거 확보를 위해 화학과 지질학, 해부학 등 관련 지식을 꿰고 있고, 과거에 일어난 비슷한 유형의 과거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마차가 달리는 ‘홈즈의 시대’가 아닌 그리섬 반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범죄수사 방식으로만 본다면 아직도 홈즈 시대보다 더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지검 특수조사실에서 이뤄진 살인사건 용의자 조모씨의 공범 박모씨에 대한 물고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충격은 1987년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 못지 않다. 아니 오히려 훨씬 크다. 박종철 사건으로부터 1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인권대통령’이 4년 반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또 용의자가 시국사범도 아니었고, 고문 장소도 인권을 옹호한다는 검찰청사였다.

사건의 은폐 시도도 15년 전보다 더욱 계획적이고 치밀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유명한 발표는 ‘자해를 시도했다’는 말로 교묘하게 바뀌었고, ‘물고문은 절대 없었다’며 수사관들이 사건 초기 특조실에서 물바가지와 수건을 치우는 등 현장을 ‘은폐한’ 의혹도 있다.

검찰은 한 술 더 떠 특조실을 언론에 공개하며 “욕조도 없는 이런 곳에서 무슨 물고문이냐”며 의기양양해 했다.

그러나 15년 전에 머리를 욕조에 처박았던 고문 방식이 얼굴에 물수건을 덮어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붓는 악랄한 방식으로 바뀐 것을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애국지사를 잡아다가 “동료를 불어라”며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에 붓는 고문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고문은 범죄행위다. 근대법 이전에는 ‘자백은 증거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여서 자백을 받기 위해 갖가지 고문이 행해졌지만 프랑스 대혁명 후 자백의 증거능력은 부인되고, 묵비권 등 피의자 권리가 보호되기 시작했다.

우리 헌법도 제12조 2항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고문을 금지하고, 묵비권을 보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수사 현실을 돌아보면 수사관들에게 법 규정을 곧이 곧대로 지켜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CSI에 나오는 수사관들을 보고 “우리도 저 정도로 지원해줘 봐, 못하나”는 푸념도 일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밤낮이 따로 없는 근무환경에, 주변의 곱지않는 시선에, 앞서가는 언론의 작문성 기사에,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치는 높은 분의 역정에 모두 피곤하다는 것은 이해를 한다. 그렇다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문이라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고문이 합법적이었던 조선시대에도 매질 하는 뭉둥이(신장ㆍ訊杖)의 크기를 정하고 1회 30대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경국대전ㆍ經國大典의 刑典)

구속된 홍경령 전 강력부 검사는 “나를 일제고등계 형사처럼 만들고 있어 너무 억울하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조폭수사는 다들 그렇게 해왔는데, 억울하게 혼자만 당했다는 억울한 감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원하는 조폭수사는 홍 전검사의 방식과 다르다. 이제는 과학수사를 원한다. ‘과학수사란 이렇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CSI시리즈를 모든 강력부 검사가 한번 더 시청하기를 권한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2/11/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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