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한국 록을 다시 생각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본식 주점에 잠시 들러 히레(정종 대포의 일종)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은 재즈의 계절이라고 한다.

재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왠지 그럴듯한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존 콜트레인의 ‘발라드’를 들으며 가볍게 커피 한 잔을 곁들이거나, 보졸레 누보를 담은 와인잔에 재즈를 비추어 보며 이 계절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위에서 열거한 문화적인 여유들 가운데 하나도 못 누려보고 가을을 보내고 있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잠시 표현해 보았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올 가을에 가장 많이 접한 음악장르는 재즈가 아니라 록이었다.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가을 축제에 여러 밴드들이 초청되었고, 그 덕분에 공짜로 귀동냥을 많이 한 까닭이다.

사실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공연은 대학 축제의 공식화된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올 가을에 보았던 공연 풍경에서는 최근 몇 년과 다른 그 어떤 활기와 생동감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에 발간되었던 팬진(‘fan’과 maga‘zine’ 합성어) ‘공’에 의하면 그 당시 클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밴드들이 서울에만도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고비로 해서 밴드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클럽들도 상당수 문을 닫았다.

인디 밴드들이 자생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었고, 음악적인 지향성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것이 그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환위기 이후부터 2002년까지 홍대 부근의 클럽 풍경은 록과 테크노와 힙합이 동거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동거상태가 상당히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다양성이 뿌리내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들을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적인 움직임이 배태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주변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록을 둘러싼 문화적인 맥락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0년 넘게 한국대중음악을 지배해 온 10대 위주의 댄스음악에 대한 염증이 뚜렷하게 일반화되고 있으며, 대규모 기획사들의 영향력에 의해 거의 장악되다시피 한 공중파 음악방송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들은 대중음악과 관련된 ‘낡았지만 소중한 원칙’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대중음악이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만 뻥끗하는 장난일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라고나 할까. 대중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어야 한다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원칙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감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올 가을에 록을 만나는 일이 각별했던 일도 이러한 맥락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록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힙합·펑크(punk)·스카·펑크(funk)·애시드·디스코 등과 크로스 오버되면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성을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엽기 발랄한 펑크(punk)를 들려주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도회적 감수성을 중성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롤러코스터’, 하드코어와 스카를 내면화하고 있는 ‘레이지본’, 펑크(funk)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준 ‘불독맨션’, 현대의 허무와 어둠을 노래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 세련된 애시드 힙합을 들려주는 ‘비바 소울’, 묘한 분위기의 보컬이 인상적인 ‘트랜스픽션’, 밴드명과는 달리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사하는 ‘흐지부지’ 등등.

이제 한국의 록은 하나의 흐름으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다양한 흐름들이 혼재된 록의 지형에는 진정성을 향한 몸짓과 대중성과 관련된 고민들이 배어있다.

한국 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자 하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는 ‘한국의 록’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서 신중현부터 델리스파이스까지 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밴드 14 팀을 선정했다.

서태지가 빠진 것이 조금 의아하기는 하지만, 기획의 의도와 적실성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록이 문제인 것일까. 록이야말로 매니지먼트와 거대자본에 의해 장악된 한국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이라는 문화적 공감의 표현은 아닐까.

2002년 가을, 록은 개별 음악장르가 아니다. 대중음악은 ‘음악’이어야 한다는 문화적 요구를 대변하는 상징일 것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11/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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