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역사는 판단한다.

대통령 선거가 30여일 남았다.

과연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 질까.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후보는 요즈음을 위기로 보고 있을까. 호기로 보고 있을까. 다음날의 유세에 나서기 위해 잠들기 전에 무엇을 할까?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서 몇주째 논픽션 분야 1위에 올라 있는 전 뉴욕시장 루돌프 줄라아니의 회고록 ‘리더쉽’에는 흘려 버릴 수 없는 대목이 나온다. 줄리아니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질 때 현장에 있었다.

근처 건물에 갇혀 있다가 구조본부를 차리고 사태를 수습했다. 잠을 자기 위해 맨해튼 친구 아파트에 온 것은 12일 새벽 2시 30분. 그는 TV를 보며 취침 전 습관대로 책을 읽었다. 로이 잰킨슨경(영국 노동당, 전 재무장관. ‘그래스톤’의 저자)이 쓴 ‘처칠’자서전이었다.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것을 특별히 구해 틈틈이 읽던 중이었다.

줄리아니는 처칠이 1940년 총리가 되어 독일과 전쟁을 벌이는 불굴의 용기에 취해 새벽 4시 30분에야 잠이 들었다. 독일의 런던 폭격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처칠의 태도에 반해 그동안 즐겨 읽었던 워싱턴, 링컨, 케네디의 자서전에 추가해 ‘처칠’ 것을 더 많이 읽으리라 마음 먹었다.

9ㆍ11 사태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웅’이 된 줄리아니는 30여명의 동료를 포함해 수천명이 죽은, 최초의 ‘세계국가’ 미국의 비극을 보면서 그렇게 첫 밤을 보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에게 그의 ‘리더쉽’을 권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자리를 떠나는 김대중 대통령, 전직 대통령들, 그리고 이번 대선 후보들에게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역사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로버트 다렉의 책을 권하고 싶다. ‘대통령에게 만세를- 미국 대통령들의 성공과 실패’(1996년)란 책이다.

다렉 교수는 이미 프랭크린 루즈벨트, 린든 존슨, 로널드 레이건에 관한 평전을 쓴 바 있는 역사학자며 대통령학 연구자다. 그는 ‘대통령 만세’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미국이 건국 이후 빌 클린턴까지 52차례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당선된 43명중 겨우 17명이 재선이 되고 2명이 탄핵청문을 받으며 국민의 55%이상 득표한 대통령도 17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대통령은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20세기에 들수록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대통령에서 멀어져 가는 경향을 보였다.”

다렉 교수에 의하면 적잖은 대통령이나 후보들이 공격을 받으면 “그건 역사가 판단 할 일이다”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판단해 보면 공격이나 비판이 다 옳았다. 그 이유는 대통령들이 자기과신, 자만, 과대망상, 지적부족으로 역사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조사하면 마치 프로 야구선수들이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타율을 올릴 수 있듯이 해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착했다.

기록을 조사하고 해석하기 위해 그는 성공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다섯가지 자격을 정했다. ▦국민을 더 낳은 미래로 끌고 가기 위한 통찰력과 이해력을 갖춘 비전 ▦이상을 적당히 버리고 현실주의를 택하는 실용주의 ▦국민의 동의ㆍ합의를 이끌어 내는 콘센서스 구축 ▦국민복지를 최대 목표로 개인 인격에 카리스마를 갖췄는지 여부 ▦국민의 신뢰감 여부 였다.

그는 이 기준에 맞는 대통령을 프랭크린 루즈벨트, 링컨, 아이젠하워, 케네디, 시이도어 루즈벨트, 윌슨 등을 꼽았고 여러 장점을 가졌지만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앤드류 존슨, 린든 존슨, 닉슨, 제럴드 포드, 카터 대통령 등을 들었다.

앤드류 존슨(1865~69)은 링컨이 1865년 연임 1개월여만에 암살되자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인 링컨의 유지를 살리지 않고 흑인의 정치 참여, 동등권 등을 규정한 흑인해방국법과 14차 헌법 수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결과 탄핵에 회부되었으나 단 1표차로 부결되는 행운(?)을 얻었다. 물론 재선에는 실패했다. 앤드류 존슨에 대해 다렉 교수는 “군대 없이 싸우는 장군”이라며 “국민의 합의(흑인의 우대, 남부의 적당한 응징)를 무시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 오하이오대 경제학 리차드 베더 교수는 위대성 평가에서 앤드류 존슨을 남북전쟁의 확장된 예산을 절감 했다는 이유로 위대성 2위로 평가했다.(‘어제와 오늘’ 10월 31일자).

다렉 교수는 또 린든 존슨가 하루 18시간 정치에 전념했지만 과다한 약속(월남평화, 위대한 사회)으로 자신을 과거에 파묻히게 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존슨이 주창한 ‘위대한 사회’는 그의 은퇴 20년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루즈벨트 이후 9명의 대통령 중 최하위인 9% 득표에 그쳤다.

다렉 교수는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가 떨어져도 속이거나,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1/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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