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박근혜"

이회창·정몽준 절절한 구애에 몸값 '쑥쑥'

‘박근혜 쟁탈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국민통합21은 그동안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와 먼저 손을 잡기 위해 경합을 벌여왔다. 현구도는 한나라당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복당 외에 당대당 통합도 좋다는 저 자세를 계속 견지하고 있으며, 국민통합21은 창당 주역인 강신옥 단장마저 단칼에 무장 해제시키는 초강수를 두면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는 모두 박 대표를 겨냥, 첫 여성총리를 거론하는 등 ‘박근혜 몸값’을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는 일찌감치 선을 그은 바 있어 빅 3중 노 후보만 박 대표와의 연대에 무관심하다.

박 대표의 마음은 이미 한나라당에 절반은 가 있는 상태. 이를 놓고 벌써부터 ‘이통(李統)-박총(朴總)’(이회창 대통령과 박근혜 국무총리)의 결합이란 말까지 들리고 있지만 정 후보 측은 끝까지 박 대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왜 이토록 양당은 박 대표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을까.

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에 대한 향수인가, TK지역의 민심잡기인가, 아니면 여성표를 의식한 상징성 차원에서인가.


한나라당, “상황종료! 발표만 남았다”

이회창 후보는 11월9일 박태준 전 총리를 만나 상호 협력이란 약속을 받아낸 데 이어 다음날인 10일 박근혜 대표와 회동을 갖고 합류를 전제로 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11월7일 박 대표가 정몽준 후보와의 회동에서 당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합류를 거절했던 점을 감안하면 일단 모양새로는 한나라당의 판정승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회동 이후 “새로운 국가건설과 개혁을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박 대표가 한나라당에 합류해야 한다고 요청했고 이에 박 대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대세몰이에 나선 이 후보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든든한 원군을 거의 확보해 낸 셈이다.

사실 한나라당으로 보면 박 대표가 이 후보 당선에 절대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물론 박 전 총리와 박 대표와의 연쇄회동에 이어 자민련 의원과 민국당과의 연대에도 문을 열어놓은 채 ‘큰 틀’의 정치를 표방하고 있어 이런 점에서 보면 박 대표 영입도 현안이긴 하지만 그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다.

박 대표 출신지인 TK지역에서는 이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또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염두에 둔다 해도 지역별로 호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50대 이상 장년층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여성표는 어떨까? 박 대표를 데려온다고 여성 지지층이 갑작스레 두터워질 것이란 예상은 설득력이 없다. 또 지난 1997년 대선처럼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민주당 조 순 후보와의 깜짝 연대를 이끌어 내며 지지율 급반등을 이뤄내야 했던 만큼 불리한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보험들기’라는 말로 설명한다. 5년전 대선에서 이 후보는 상대 후보의 연대전략에 철저하게 쓴 맛을 봐야 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DJP연대를 이뤘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박찬종 전 의원의 지원에 힘입어 부산지역 공략에 나섰다.

그 때도 JP와의 연대 및 박 전 의원의 재영입 문제가 막판까지 대두됐지만 이를 무시하고 선거전을 강행하다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번만큼은 그런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고 대세론으로 확실하게 잡겠다는 이 후보의 의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으로 박 대표가 합류하더라도 큰 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정 후보 쪽으로 간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외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 ‘박 대표 모시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통합21, “강 단장 잘랐고 대표도 줄 용의”

국민통합21은 아예 노골적으로 ‘박근혜 구애(求愛)’에 나서고 있다. 11월6일 박 대표는 정 후보와 만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의인으로 표현하며 명예회복 운동까지 벌인 사람과 같은 역사관을 가진 당하고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고 밝히자 부랴부랴 다음날 강 단장을 전격 해고했다.

강 단장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사직서 제출이지만 정 후보의 결단이란 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정 후보는 초등학교 동창생이기도 한 박근혜 대표와의 연대가 후보단일화 면에서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오기만 하면 당 대표도 내어 주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박 대표의 자세는 완강하기만 하다. 정체성도 다르고 역사관과 국가관이 맞지 않다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강 단장의 해고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그가 당에 남아 있다고 가지 않고, 없다고 합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김재규씨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당의 핵심참모로 일하고 있다면 그 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박 대표가 강 단장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 지는 본인 자유지만 그런 역사관에 동조하는 당과는 재고할 여지없이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와의 회동에서 퇴짜를 놓고, 강 단장 해고에도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면서 한나라당 이 후보와의 만남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국민통합21 측은 더욱 몸이 달아 있다. 정미홍 홍보기획단장은 “박 대표가 오면 젊은 투톱의 지도자를 테마로 한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박 대표와 손을 잡으면 홍보와 선거전략 및 득표전, 모든 면에서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합류하자마자 적어도 지지율 5% 포인트의 수직상승은 가능해 질 것”이라며 “게다가 이 후보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TK지역의 만회와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가진 장년층 흡수, 여성층에 대한 호소 등을 감안하면 차후 모든 면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근혜 특수’를 설명했다.

그는 또 “그렇게만 된다면 후보단일화 협상은 사실상 하나마나 우리쪽으로 무게 추가 쏠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마음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점이 정 후보측의 고민거리다. 박범진 기획위원장도 “박 대표가 우리 당에 오면 정치적 미래가 보장되는데 왜 앞길을 가로막을 사람들이 잔뜩 있는 저쪽(한나라당)에 마음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 “이회창 후보와 많은 부분 공감”

박 대표는 사실상 ‘옛 님’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 당대당 합당이나 한국미래연합 당원들에 대한 처우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금명간 ‘한나라호’에 몸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이회창 후보와의 회동 직후 “국가건설과 개혁을 위한 이 후보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당과 협의해 최종적인 회답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뒤 “매우 만족스럽고 유익한 만남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에 꼭 와서 일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 후보가 말했고,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개혁 방안을 몇 가지 밝혔다”면서 “(같이 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찬성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 당과 의논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나라당으로의 합류의사를 밝혔다.

김기덕 공보특보도 “박 대표가 자리에 연연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을 때 요구했던 당권-대권분리와 상향식 공천 및 집단지도체제 등이 이제 거의 이뤄져 당의 새로운 정체성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박 대표가 이 후보와의 회동에서 ▷ 정치개혁 ▷ 남북관계 ▷ 여성 ▷ 지역갈등 ▷ 정치보복 문제를 5대 국가적 과제로 다뤄야 하며, 특히 정치개혁과 관련해 ▷ 정당개혁 ▷ 권력분립 ▷ 선거제도 ▷ 정치자금법 등은 다음 정권에서 반드시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실제 김 특보에 따르면 박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당내에서 본인을 고립화하려는 세력이 있었고 그 부분을 당시 이 총재가 묵인한 측면도 있다고 봤고, 그래서 더 이상 한나라당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탈당했다는 것.

그랬던 박 대표가 이번에 합류의사를 결정한 배경에는 이 후보가 박 대표에게 무언가 ‘확실한 당근거리’를 제시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여성총리 제의 외에 당내에서의 일정 지분을 이 후보가 보장해주는 등의 입당 선물을 주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다.

상한가를 치닫고 있는 ‘박근혜 몸값’에 대해서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다만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가진 계층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가능하다. 이는 유신독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박 대표에게는 동정적인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던 박 대표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여기에다 TK 출신의 유력한 여성 대권 예비주자와 때묻지 않은 참신성 및 강직한 이미지 등이 그의 평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배경이 된다. 이런 점들이 대권을 향해 뛰는 이-정 두 후보에게 도저히 박 대표를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1/14 17:04


염영남 liberty@hk.co.kr